2008 은혼 캘린더

Record 2008/01/28 23:09
필자가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9월 경이었던 듯 하다. 악마의9시저주님과 SilverySoul님께서 추천하신 은혼과 개인적으로 보고 싶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중에서 갈등 하던 것도 생각난다. 당시에는 2007년 한 해동안 애니메이션을 한 편만 보겠다고 생각했으나, 돌아보면 훨씬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말았다. 현재는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하는 축에 속하고, 그다지 많이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보고는 있다.

지난 1월 19일은 필자의 생일이었다. 생일 며칠 전에 Haroo님과 악마의9시저주님, SilverySoul님, PLoTeN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필자가 놀랐던 것은 모두로부터의 선물이었다. 악마의9시저주님께 받은 수첩과 샤프펜슬, SilverySoul님께 받은 2008 은혼 캘린더와 은혼 만화책, PLoTeN에게 받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만화책과 블리치 Souls 한정판이 그것이었다.

먼저 SilverySoul님께 받은 2008 은혼 캘린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른 선물들은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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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몫을 하고 있는 '올해의 목표를 여기에 적어'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긴토키의 모습이다. 사진보다 더 보랏빛이 나는데 엉터리 화이트 밸런스가 색을 망쳐 놓았다. 올해의 목표라면... 아마도 성적 향상이 아닐까 한다. 과고에서 바닥을 깔고 있는 성적이기 때문에 빨리 끌어 올리지 않으면 대학 진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공부밖에 없는 것인가...

이후로는 한 달에 한 장씩 다양한 주제와 그림의 캘린더가 있다. 그림이나 문구에 별 의미는 없으니 의미에는 크게 신경쓰지 말고 보기 바란다. 특히 우측 하단에 있는 '주최'나 '협력' 등의 문구에 주목하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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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캘린더이다. 드래곤 볼을 패러디한 '긴토키 볼'이라는 주제인 것 같은데 솔직히 잘 이해는 안된다. 은혼에 푹 빠지지 않아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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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도 교통안전 강화의 달'이라는 문구가 씌어진 2월 캘린더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2월이 교통안전 강화의 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차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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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라고 3학년 Z반 긴파치 선생을 매치시켜 놓은 듯 하다. 필자는 애니메이션 뒷쪽에서 해 주는 것을 몇 개 본 것 외엔 없으나 따로 소설로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보아야겠다. (근데 배경 분위기는 왜 저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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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부터 해수욕을 즐기자는 것이다. 괴수를 타고 바다 크루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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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애니메이션에서는 진선조) 대원을 모집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신센구미는 그 대원을 어떻게 충족시키나 궁금할 정도로 매번 죽어나간다. 과연 모집에 응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지...(만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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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위반으로 철거' 딱지는 센스있는 신센구미의 짓이다. 전체적으로 코믹물이지만 가끔 없으면 서운한 액션신을 만들기 위해 설정된 느낌이 없지않아 있는 귀병대의 모집 공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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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소재가 떨어졌는지 영화까지 개봉한다고 나섰다. 뭐, 이해 불가이므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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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걸맞는 여름 컨셉이다. 오타에와 삿쨩의 모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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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이어 앨범 발매다. 그러고 보니 긴토키가 노래부르는 모습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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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과식하지 말라는 문구인데... 25화였던 '전골은 인생의 척도다' 편을 생각나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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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소재 떨어졌다는 것을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요로즈야 식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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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주요 캐릭터 모두 등장과 함께 2008년의 마지막 달임을 보여주고 있다.

1월달 캘린더는 이미 벽에 붙어 있는 상태이다. 올해가 아니고는 쓸 수 없는 것이기에 열심히 써야 하겠지만, 역시 쓰긴 좀 아깝다.

생일선물을 주신 모든 분들과 카메라를 빌려 준 박주형, 카메라를 전달해 주기 위해 수고한 PLoTeN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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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작용이 클 수록 반작용이 크다'는 법칙은 물리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다. 세계 모든 것이 같은 이치로 되어 있다.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렵다. 개개인을 존중하면서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잘 통제하는 사람을 훌륭한 리더라 부른다. 그들은 개개인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의 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한다. 그런데, 그들의 통제 방법을 보면, 절대 강제하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며 사람을 대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도 집단을 통솔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이란, 결코 대기업의 총수나 훌륭한 정치가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선생님들 또한 '그들'에 속한다. 물론 그렇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화를 내거나 체벌을 가하는 방법 전에 말로서 학생들을 통제한다. 아무리 학생들이 통제에 응하지 않더라도 무턱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심한 언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리더가 가지는 '인내심'이며, 필자가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필자는 근 3일 동안 졸업 수련회에 다녀 오면서 '선생님'이라 불리면서도 이러한 리더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았다. 공주 유스호스텔 의 교관 선생님들이었다. 일단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고 스승으로서 대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 한 분 한 분은 모두 훌륭한 분이셨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한 분 한 분의 인격이 아닌, 집단을 통솔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필자가 공주 유스호스텔 에 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에도 체험학습으로 다녀 온 적이 있다. 필자는 과거의 일을 곧잘 잊어버리지만, 공주 유스호스텔 에서의 며칠은 '최악'의 체험학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물론 흐릿한 기억이었지만 흐릿하게 남아 있던 안좋은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해 준 것은 이번 3일간의 교관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다.

공주 유스호스텔 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교관 선생님을 보았을 때 선생님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차에서 가방을 가지고 내렸다는 것이다. 학교측에서 분명 가방을 가지고 내리라고 해서 가지고 내렸더니, 유스호스텔 측에서는 다시 가방을 버스에 놓고 내리라고 한다. 분명 유스호스텔 측과 학교 측의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어난 일임에도 그들은 학생들에게 대고 소리부터 지르고 있었다. 생각을 해 보라.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들고 내렸는데 다시 놓고 오라고 소리를 지르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안 좋은 기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입소식을 위해 강당에 모여 자리를 정돈하고 있을 때였다. 학생들이 많이 웅성거리자 교관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선생님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여기가 얼마나 만만한 곳이 아닌지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협박이다. 학생들이 통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을 터인데, 웅성거리는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조용히 하지 않으면 운동장에서 굴린다느니, 밤에 바로 잠이 들게 만들어 주겠다느니 하는 협박을 하는 것이 옳은 통제 방법일까.

졸업 수련회의 가장 큰 목적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졸업 수련회에서의 추억은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재밌게 놀 수 있는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만약 '고생 = 추억'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첫째날 밤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외의 추억은 없었다.

캠프에 가서 밤 늦게까지(적어도 새벽 3~4시까지) 놀아 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마음일 것이다. 친구들과 그렇게 늦게까지 놀아볼 수 있는 기회가 캠프 이외에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에서는 첫째 날에는 아예 자유시간을 주지 않았고, 둘째 날에는 10시부터 11시 40분까지 자유시간을 주고 굉장히 인심을 쓴 것처럼 말한다. 3일을 통틀어 식사 후 쉬는 시간이나 일정 사이의 쉬는 시간을 모두 합쳐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해야 3~4시간 정도.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을 씻는 데 보냈으므로 실제로 친구들과 추억다운 추억을 남길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학생들을 일찍 자게 하는 것은 옳으나, 수련회 본연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늦게까지 노는 학생들을 자율에 맡기는 융통성도 조금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글이 학생의 입장만 고려하여 쓰여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물론 선생님들은 선생님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가령, 이번 졸업 수련회는 부원중학교에서 최초로 가는 졸업 수련회였기 때문에 철저히 통제하여 사고를 방지하여 '첫 졸업 수련회'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도 유난히 통제에 따르지 않아서 통제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을 떠나 한 명의 학생이 느낀 것이 어떤 것이었나를 적은 것이다. 분명 선생님들의 통제 방식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 학생의 생각을 밝히는 것은 지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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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Haroo 님과의 만남

Record 2007/10/09 22:45
오늘은 10월 9일, 한글날인 동시에 Haroo 님의 생일이다. 마침 학교 시험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1시 정도에 학교가 끝났기 때문에, PLoTeN과 함께 이사가신 Haroo 님께 가기로 했다. 인터넷 상이라 이사가신 곳의 자세한 정보나 학교 이름은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Haroo 님께서 이사가신 동네는 서울에서 '잘 사는 동네'로 분류되는 곳이다. 필자는 이 곳에서 3살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영재교육을 받느라 수도 없이 왔었기 때문에 매우 정겨운(?) 동네이기도 했다. 지하철을 이용, 1시간이 넘도록 이동하여 Haroo 님께서 말해주신 역에서 하차했다. 그러나 워낙 역이 크다 보니 출구를 잘못 나와서 한참을 헤맸다.

주위에서 무선인터넷을 겨우 잡아서 Haroo 님의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지도를 알아낸 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학교는 버스를 타고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혹시 Haroo 님의 학교도 오늘이 시험이라 일찍 끝난게 아닌가 하여 걱정을 하면서 갔지만, 다행히도 운동장은 체육수업을 하는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3시 30분이 넘어가도 수업이 끝나지 않기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화단에서 풀을 뽑으시던(!) 교장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선생님께서 4시가 넘어야 수업이 끝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7교시였던 것이다. 결국 운동장 한켠에 있는 벤치에서 지뢰찾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4시가 되자 한두 명씩 교문을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교문에서 지키고 서서 Haroo 님께서 혹 나가시지 않나 열심히 찾고 있었다. 4시 5분이 조금 넘어서 드디어 Haroo 님의 얼굴을 1달 만에 볼 수 있었다. Haroo 님께서는 필자가 분명히 찾아 뵌다고 말씀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올 줄 몰랐다면서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PLoTeN과 나는 은근히 Haroo 님께서 여학생과 함께 하교하길 바랐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전에 살던 동네이기 때문에, 알던 친구들과 다시 친해져서 잘 지낸다고 하셨다. 성적도 상위권에 속한다고 하셨고(무려 이번 시험에서 전체에서 7개밖에 틀리지 않으셨다고!), 다른 생활들도 전반적으로 괜찮다고 하시니 다행이었다.

함께 집들이(?) 겸 하여 Haroo 님의 집으로 향했다. 4층의 연립주택이었는데, 그 꼭대기 층에 살고 계셨다. 집 안은 굉장히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원래 있었다는' 흰 색의 쇼파가 인상적이었다. 집 구경을 대략적으로 한 뒤 깨달은 사실, 오늘은 Haroo 님 생일이었다는 것. 미처 생일 선물은 커녕 생일 케이크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쉬운 대로 집을 나서며 붕어빵으로 생일 선물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5시 30분에 학원을 가야 했기에 서둘러 나온다고 나왔으나, 결국 집에 도착한 것은 7시가 다 된 시간이었고, 와서 씻고 나온 순간 몰려오는 극도의 피로감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니 시침은 10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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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졸업 앨범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먼저, 인생에서 최대 3권만 소유할 수 있으며, 같은 앨범을 가진 사람들은 극히 제한되어있다. 둘째로, 학창 시절의 추억을 소중히 지켜 준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연락을 취할 경우 연락처 제공의 수단이 된다. 때문에 졸업 앨범은 누구나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연락처 제공의 수단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은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학원 등에서 광고물을 발송할 때 졸업앨범의 주소지와 이름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학기 초,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붙잡고 말을 거는 사람들 중 일부는 졸업 앨범을 잠깐 가져와서 복사를 해 주면 돈을 주겠다는 식의 말을 건넨다. 학생의 신분이기에 돈에 약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졸업 앨범을 가져 와서 주소록 부분을 복사해 주곤 한다. 모든 학교의 졸업 앨범을 복사한 그들은 사라진다.

필자의 아픈 기억은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다. 필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함께 하교길에 있었다. 갑자기 한 여자가 다가와서는 초등학교 앨범을 잠깐 복사해 주고 가면 5,000원을 준다고 하는 얘기를 하였다. 마침 당장 돈이 필요하던 나는 선뜻 승낙을 해 버렸고 집에서 졸업 앨범을 가지고 다시 교문 앞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비극의 원인은 앨범에 있었다. 다른 학교의 앨범은 학생의 연락처와 주소가 앨범 맨 뒤에 모여 있었으나, 필자가 졸업한 학교의 앨범은 각 페이지의 사진 아래에 주소와 연락처가 있었으므로 한꺼번에 복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교문 앞의 그들은 앨범을 며칠 간 빌려 주면 모두 복사한 후 택배로 보내 주겠다고 하였다. 순진하였던 것인지 바보같았던 것인지 필자는 이를 받아들였고 집 주소까지 남기고 앨범을 넘겨 준 뒤 집에 돌아왔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택배는 현재까지도 오지 않았으며, 아무런 연락 조차 없다. 일종의 사기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필자는 다른 사람들이 앨범을 보거나 앨범 얘기를 하면 기가 죽는다. 바보같이 사기를 당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일까. 그 당시 옆에 있던 친구 외에는 '5,000에 앨범을 팔아먹은' 나의 이야기를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이제 중학교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 부끄러운 기억을 과감히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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