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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9 한국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25)

필자의 학급에서는 점심시간에 컴퓨터를 개방하여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I-Meps라는 음악 감상 프로그램에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를 재생 목록에 올려 놓고 랜덤재생으로 이를 듣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노래(OP/ED, Character Song)나 윤하의 노래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주로 이런 노래들을 추가해 놓는데, 대부분이 일본 노래이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쪽바리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일본 노래가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노래만 좋은 건 아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가 일본 노래 중에 많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필자가 싫어하는 타입의 노래가 한국 노래 중에 많이 있다. 필자가 싫어하는 타입의 노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노 님의 표현을 빌려 '질질 짜는 노래'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또한 사랑으로 인해 아플 수도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에 마냥 '질질 짜는' 노래는 딱 질색이다.

사랑앓이 - FT아일랜드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기다림을 앓고 있다고
내가 더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그리워 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눈물로 앓고 있다고 이렇게
...
그저 내목숨 다 바쳐 사랑할 사람
이제 날 잊고 살아갈 무정한 사람
그저 내전부를 다 바쳐 사랑할 사람
이제 날 잊고 살아갈 너
내 목숨 다 받쳐서 사랑할 사람
내게는 눈물만 주고 갈 사람

위 노래는 많은 인기를 얻은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이 노래는 필자가 싫어하는 노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별을 아름답게 맞지 못하고 미련이 남아 '앓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 싫다. 만난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고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상 이별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것이 사랑임을 뻔히 알면서 이별을 준비하지 못해 이별 후에도 미련에 괴로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에게는 불쾌함을 준다.

으랏차차 - 럼블피쉬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해도 내일 향해 걸어가는 이길이
언젠가는 더 커다란 날개가 되어 줄테니 나를 긴장하게 한거야
지루하게 보였던거야 네 모습을 보여줘 수줍어서 그런거야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고독이란 너의 이름만으로
다시 밀어내려고 이렇게 난 소리질러
으라차차 한 번 더 참아볼게 으하하하 웃으며 넘겨볼게
혼자여서 좋은 일이 아직도 너무 많은데~

위에 소개한 가사는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에 속하는 럼블피쉬의 으랏차차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이 노래는 일본 노래도 아니며, 사랑앓이와 마찬가지로 이별 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 이유는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언뜻 들어 보아서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밝은 멜로디에 즐거운 가사이다. 제목 또한 으랏차차로, 아픔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이는 단어이다. 하지만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속뜻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별 후에 다시 찾아온 고독, 그 고독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웃음으로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4-1 한국 문학의 개념과 특질 중......
눈물을 닦아 낼 수 있는 것은 웃음이다. 우리 민족은, 슬픈 상황을 슬프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상황을 더 슬프게 만들 뿐이며,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은 오로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문학에서는 슬픈 대목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흔하다.
......
삶은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려움도 겪게 되고, 슬픈 일도 당하게 되는 것이 삶이다. 사람은 그것을 이겨 내면서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위급하거나 절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위기감이나 슬픔을 씻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혜가 문학에 나타난 것이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고 할 수 있다.
......

위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책의 본문 중 일부이다. 우리 문학의 특질을 소개하며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는 소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우리 문학의 특질이다. 위에 소개했던 럼블피쉬의 으랏차차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문학의 특질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슬픔에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하며 이겨내는 노래가 좋다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 노래를, 그 중에서도 남자 가수들의 노래를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짓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남의 노래를 평가한다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필자가 듣기에 그들의 노래에는 진실됨이 결여되어 있다. 슬픈 노래를 불러도 슬픈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으며 즐거운 노래를 진짜로 즐기면서 부르는 사람은 드물다. 노래를 들어도 뭔가 말라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교'라고 부르는 여러 창법들은 필자에게 거북함을 줄 뿐이다. 노래의 잘 하고 못 함을 누가 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요치도 않은 부분에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것을 보고 잘한다고 하는 것을 필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 적절한 플래시의 사용은 페이지의 질을 높여주지만 지나치게 많은 플래시는 오히려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로딩 속도를 떨어뜨리며 조잡하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노래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한다. 클라이막스에서 기교를 뽐내는 것은 좋지만, 이를 남발하는 것은 듣는 이에게 거북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많은 일본 노래를 아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일본 노래라고 해 봤자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노래와 윤하의 노래 정도밖에 모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 중에는 필자가 싫어하는 노래의 유형이 없다. 질질 짜는 노래도, 감정이 없는 노래도, 억지로 기교를 부린 노래도 없으며 자신의 기분을 가사와 선율로 표현한 솔직한 노래들이다.

이 글로 필자가 교실에서 일본 노래를 트는 것에 대한 변명은 충분히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밝혀 두지만, 이 글은 필자의 취향을 남들에게 강요하고자 함이 아닌 필자의 취향을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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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