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디디야

인곽에는 두 개의 종교동아리가 있다. 하나는 기독교 동아리인 '여디디야'이고, 다른 하나는 카톨릭 동아리인 '카톨릭 작은 모임', 일명 카작이다. 카작은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디디야는 매일 면학이 끝나는 밤 12시에 시청각실에서 15분간 찬양과 말씀의 시간을 가진 후 기숙사로 돌아간다.
고등학교에서 애들끼리 모여서 15분동안 뭘 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찬양집도 있고, 피아노에 훌륭한 반주자도 있는 제법 괜찮은 찬양 모임이다. 학원 때문에 교회에 가기도 힘은 인곽 학생들이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게, 하루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만우절 - 4/1

3월 31일의 면학이 끝나고 12시가 지난 시각, 4월 1일 만우절이라는 것도 깨닫기 전에 여디디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찬양이 계속 되던 여디에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왔다. 평소에는 선배들이 간단하게 준비를 해 와서 전해 주지만, 이번엔 준비한 것도 없이 안지현 선배가 앞에 서서는,

"소문 들으신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기숙사에 12시 10분까지 들어가야된대요. 그래서, 여디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짱이 좀 미쳤어요. 아무튼, 지금까지 너무 고마웠구요, 우리 기에서 이렇게 끝내고 싶진 않았는데, 암튼 너무 죄송해요. 이미 선생님들끼리 확정된 거라 바꾸긴 어려울 것 같구요, 저희도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짱이 좀 미쳐서... 오늘 마지막이니까, 찬양 크게 불러 주세요. 죄송합니다."

살짝은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한 선배의 말은 모두를 속이기에 충분했으리라. 나와 주환은 정말 감쪽같이 속았고, 만우절이라는 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학생들은 모두 속여 넘길 정도의 괜찮은 연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정말 찬양 열심히 불렀다.

참, 장난도 이런 장난이 있구나.

남은 이야기여디디야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붙여 주신 솔로몬의 다른 이름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본래 히브리어 발음은 '여딛-야흐'이며 '흐'의 발음을 약하게 하여 소리 내 보면 '여디디야'로 들림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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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봉사활동 - 3/12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다녀 오는 곳이 꽃동네 봉사활동이다. 학교 측에서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 아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학생으로 지도하기 위해 학기초부터 간다고 했지만, 과연 얼마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봉사활동 후 학교에서 소감문을 제출하라고 해서 제출한 바가 있다. 아마 잘 쓴 것을 뽑아서 교지 등에 싣기 위함일 것이다. 본 포스트는 이 소감문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다시 쓰기는 너무 귀찮기 때문이다.(ㅡㅡ;)

가평 꽃동네 봉사활동 소감문내가 꽃동네라는 곳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작년 아는 형에게서였다. 봉사활동으로 꽃동네에 다녀왔다는 형은 오자마자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어떤 곳이길래 그럴까 하던 곳에, 이번에는 직접 다녀오게 되었다.

꽃동네는 연고지가 없는 어려운 분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는 곳이었다. 오갈 곳 없는 노인 분들, 정신적으로 편찮으신 분들과 심신 장애인들, 그리고 거처할 곳이 없는 부랑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꽃동네였다.

사전에 각자 어떤 위치에서 봉사활동을 할 것인가 정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희망의 집에 배치되었다. 희망의 집은 심신 장애인, 즉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계신 곳이었다. 교지 ‘곰솔’에 적힌 선배의 글에 의하면, 모든 집 중에 희망의 집이 가장 힘들다고 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봉사활동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희망의 집 3층에 배정되어 식판을 닦고, 빨래를 널고, 편찮으신 분들 식사를 도와 드리는 등의 간단한 일만 하면 되었다. 물론 쉴 시간이 없이 계속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다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심히 힘들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부르셔서 가 보았다. 말씀하시는 것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한참을 헤매야 했다. 계속 서랍을 가리키시길래 서랍을 열어 보았더니, 건빵을 포함한 몇 개의 과자가 들어 있었다. 난 당연히 과자를 달라는 것인 줄 알고 과자를 드리려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원하는 과자의 종류가 틀렸나 해서 다른 과자를 드려 보았지만 계속 아니라는 눈치셨다. 한참을 헤맨 끝에 전달된 의미는 옆의 할아버지께 과자를 드리라는 것이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잠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달라고 했지, 옆 사람에게 주라는 말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불행히도 목에 걸릴 위험이 있어 아무 음식이나 주면 안 된다는 지시에 과자를 드리지는 못해서 유감이지만, 편찮으신 분들이라도 모두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실감날 정도로, 삭막한 병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저녁 시간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의 식사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말을 온전하게 하실 수 있어서 나에게 이것저것 지시하셨는데, 자기 밥은 한 숟갈도 드시지 않으시고 제일 먼저 시키신 일이 가지고 계시던 고기를 같은 방에 있던 다른 할아버지들께 조금씩 나누어 드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씩 나누어 드리자 더 나누어 드리라고 하셔서 결국 남은 건 적은 양이었다. 다른 할아버지들이 다 드셔 갈 때서야 식사를 시작하신 할아버지셨다. 자기 밥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몸 성한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일 것이다.

청소 도중에 만난 한 뇌성 마비가 있으신 아저씨도 생각이 난다. 말을 제대로 하실 수 없어서 소통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지만 70%의 의역을 보태서 겨우 대화가 가능했다. 가방을 빨아달라, 약을 정리해 달라 하는 것 이후에는 핸드폰을 가져 와서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아, 핸드폰도 가지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당연히 그 곳에 계신 분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을까. 7번까지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하나하나 불러 드리고 2번에 전화를 걸어 통화하시는 것을 도와 드렸다. 아들이나 가까운 사람처럼 보였는데, 대략 핸드폰을 샀으니 등록을 하라는 것 얘기 같았다. 바로 앞에서 듣는 나도 해석이 어려운데, 전화기를 통해 듣는 상대방은 과연 알아들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해서 짧은 봉사활동이 끝났다. 짧았지만, 생각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꽃동네가 비록 어려운 분들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하나의 마을이고, 가족이며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 단순히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동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봉사 활동을 통해 남을 돕는 마음을 기르는 것도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겠지만,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이번 활동의 가장 큰 수입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제출용'의 티가 너무 날 수도 있으나, 그야말로 포스팅을 새로 하면 거의 다시 쓰는 게 될 것 같아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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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죄다 - 3/10

객지에서 아픈 것이 가장 서러운 것이라고 한다. 보살펴 줄 가족도 없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과고가 집이 된 상황에 과고를 객지로 표현한다는 게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 역시 아파도 집에서 아픈 게 더 낫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영 좋지 않더니 오전 수업이 끝나고서는 근육통에 으슬으슬한 게 오한까지 와서 전형적인 몸살 감기 증상을 보여 주었다.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겨우 오후 수업을 끝내고 저녁 전에 보건실로 향했다.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보건 선생님께서 약도 잘 안 주시고 아프면 그냥 누워 있으라고 하신다고 하는데, 신입생에게는 아니었나보다. 곧 퇴근해야 하니 저녁 후, 간식 시간, 자기 전에 먹으라고 3개의 약과 쌍화탕을 주셨다. 마침 간식 당번으로 어머니가 와 계셔서 아스피린도 챙겨 먹었다.

약의 힘이었는지 불행 중 다행으로 면학은 아프다는 것을 잊은 채로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몸살 감기가 지나가자 시작되는 목감기 때문에 목 안에는 가래가 꽉 차서 가끔씩은 숨을 쉬는 것 조차도 거북했다. 여디디야에서 찬양을 할 때는 가래 덕분에(?) 갈라지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자연의 겨울바람(이제 봄이지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과고의 시설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른 학생들도 꽤 많이 아픈 듯 했다. 아파도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고 할 일은 다 해야 한다. 가장 고생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역시, 아픈 건 죄다. 건강 관리 잘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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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새해 선물로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것을 샀다. 당시엔 열심히 공부 할 작정으로 샀지만, 반 년 정도 사용하자 슬슬 플래너에 구속되는 것에 지쳐 갔고, 결국 6월에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서랍에 꽂혀 있던 것을 다시 발견했다. 곧 과고에 들어가게 되고, 과고에서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할 것 같아 다시 사용해 볼까 하고 꺼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이즈는 컴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다이어리이다. 물론 그 속도 일반 다이어리에 비해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문제는 속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전에 구입한 것은 2006년용 속지였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년치 속지를 구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꾸준히 사용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사용을 중지할 지 모르는데 또 1년치 속지를 사 놓고 썩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산 것이 언데이티드 컬리지엇이다. 본래 컬리지엇은 대학생용 속지이다. 본래 2페이지 당 하루씩인 것을 1페이지 당 하루로 편집하고 디자인을 심플하게 해서 내 놓은 것이다. 또 날짜도 적혀있지 않아 언제든 쓸 수 있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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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용해 본 느낌은 일단 만족이다. 대신 이전보다는 더 편하게 쓰려고 한다. 이전에는 플래너를 정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려서 플래너 정리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가벼운 일기처럼 쓰려고 한다. 해야 할 숙제나 제출할 리포트, 하루하루의 간단한 기록을 가볍게 적어 놓으니 훨씬 편하고 부담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꺼내는 게 아직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적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면학 시간이라는, 나만의 시간이 있어 정리할 시간은 충분하다.

앞으로 2년, 과학고 생활 동안 플래너가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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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무섭다

입소 당일 저녁 식사 전에 적응활동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수업 후 청소가 끝나고 모두 강당으로 내려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신입생 전체는 강당에 집합했고, 지시를 기다렸다. 그 때 들어 온 것은 1학년 선배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학년 학생회와 여학생회의 선배들이 열 다섯분 정도 들어오셨다.
강당 바닥에 앉아 있는 우리들 앞에 일렬로 서시더니 한 분씩 말씀을 하셨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1. 선배님께 '선배님'이라는 호칭 쓰기
  2. 인사 잘하기
  3. 식당의 아주머니들께 '여사님'이라는 호칭 쓰기
  4. 기숙사에서 정숙하기
  5. 1학년 교실 앞을 지나가지 않기
특히 인사 잘하기는 인천 과학고의 전통이라고 하시면서 선배든 동기든 선생님이든 외부인이든 무조건 인사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못할 것 같았지만 하고 보니 나와서도 누군가를 보면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벌써 적응이 된 것이리라.
문제는 벌써부터 군기를 잡는 선배님들이었다. 사전교육때부터 잡으면 입학해서는 몇 번 굴릴지도... 실제로 여학생회는 신입생 여학생을 불러서 굴렸다는 소문도 있다. 다른 학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 만큼 예의와 규칙을 중시하는 과학고의 문화일 것이다.

시험은 무섭다

신입생 진단평가로 총 3번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1차는 1월 2일 신입생 사전교육 입소식 날에, 2차는 1월 11일 신입생 사전교육 퇴소식 날에, 3차는 2월 20일에 치르는데, 이 결과를 이용해 장학금 대상자와 보충교육 대상자를 결정하고 반 편성에도 이를 이용하게 된다.
1차 고사는 수학, 과학, 영어를 보았다. 시험문제는 모두 10-가에서 출제되었는데, 사실 과고 준비하면서 학원에서 다뤘던 몇 문제 빼고는 손도 못댔다. 과학은 그래도 웬만큼 풀려 나갔다. 어차피 과학은 사전 과제 내용이 주가 되었기 때문에 손도 못 댈 문제는 없어 다행이었다. 영어는 과고 입학 때 가산점을 따기 위해 한 번 본 적이 있는 TEPS와 비슷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점수 또한 TEPS 점수와 비슷하게 나왔으니 말이다. 점수는 그나마 생각보다는 잘 나와 주었다. 수학이 50점대, 과학이 70점대, 영어가 60점대. 그래도 평균은 한 것 같아 다행이다. 2차고사는 뭐, 아직 점수는 안 나왔지만 1차고사의 절반 정도만 나와 준다면...

눈은 무섭다

퇴소를 하는 1월 11일,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영종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안 그래도 사람 없는 섬 구석에 고립될 뻔 했다. 아침에 듣자 하니 과학고로 진입하는 좁은 도로에서 차가 논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었고, 도로가 폐쇄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획인된 바는 없다. 어쨌든 그런 얘기가 믿길 만큼 상당한 양의 눈이 순식간에 내렸고, 모두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 걱정했다. 다행히 오후가 되자 눈발이 가늘어지고 해가 나면서 도로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집에 가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선생님께서, 영종도 눈은 이건 맛보기라고 하신다. 그럼 진짜배기는 어떻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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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신입생선발최종합격예정자.pdf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 최종 합격 예정자 명단


오늘, 11월 14일 2시에 발표가 났다. 아니, 난다고 했다. 글쎄, 2시에 결과를 알 수 있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홈페이지 접속이 원활하게 된 것은 4시 정도였고, 그마저도 텍스트 버전이었다. 서버가 부하를 못 견디는 것인지, 회선 트래픽을 초과한 것인지는 몰라도 2시간 내내 페이지가 마비가 된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찌 되었건, 결과는 일단 좋다. 예비합격자 명단에 G177(필자)과 G77(악마의9시저주 님)이 있다. 결과는 SilverySoul님의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되었다. 직접 전화하셔서 물어보셨다고 한다. 이 글을 빌어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알려주시지 않았으면 몇 시간 더 애를 태우고 있어야 할 뻔 했습니다.).

합격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친구들과 선생님들, 친척들에게서 전화가 와서 살짝 난감하기도 했지만, 축하해주시니 기뻤다. 그래도, 위로보다는 역시 축하가 듣기에는 기분 좋다.

사랑하는 주님, 믿고 지켜봐 주신 사랑하는 부모님, 협박을 가장한 격려를 해 주신 담임 선생님, 진심으로 걱정해 준 오재견 선생님, 수업에 들어오시지도 않으시면서 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이은숙 선생님, 매일 기도해주신 교회 분들, 학원에 다닐 것을 권유해 준 악마의9시저주 님, 진심으로 합격을 기원해 주었던 권수와 PLoTeN 외 많은 친구들, 기타 주위의 여러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왠지 수상소감같지만, 싫어도 이렇게 말하게 되는군요).

며칠 전 벌써 15기 카페가 탄생했고,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가입해서 활동중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14기 선배들과 15기 특차 합격생들 위주로 활동했지만, 오늘부터는 15기 일반전형 합격생까지 가세되어 더욱 활기를 띨 것 같다. 서로 얼굴도 보기 전에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것은 소수 정원의 장점일 것이리라.

여러 가지 느낌이 있지만 표현에 서툴기에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그냥, 기쁘다는 말로 될까.

p.s. 담임선생님께서 2회고사 전교 5등 이내 진입을 주문하셨다.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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