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의 도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벨기에의 브뤼헤(Brugge)도 멋있는 운하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의 도시 중 하나라고 합니다. 셋째 날 암스테르담을 관광하고, 넷째 날에는 브뤼헤를 관광하게 되었습니다. 브뤼헤는 수도인 브뤼셀보다 매우 서쪽에 위치해 있어서, 바다와 거의 접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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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헤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건물이며, 도로 모두가 옛 중세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마을 입구부터 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걸으면서 천천히 브뤼헤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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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헤도 운하 도시이기는 하지만 암스테르담처럼 골목마다 운하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치 도시에 흐르는 강의 느낌으로, 꽤 운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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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꽤 길어서 걷는 동안 사진도 많이 찍고,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도중에 브뤼헤의 Notre Dame 성당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브뤼헤의 Notre Dame 성당은 성당 자체보다도 여러 가지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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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기에는 다른 성당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큰 성당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는데, 안에 들어가보니 그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양쪽 벽에는 여러 가지 조각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지금도 이 성당을 미사에 사용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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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서 중앙의 하얀 조각상이 미켈란젤로의 '성모와 아기 예수'라는 작품입니다.


성당은 광장으로 가는 길에 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보지는 않고 빠져나왔습니다. 전에 방문했던 브뤼셀과 같이, 벨기에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초콜릿과 여러 가지 과자를 팔고 있었습니다. 벨기에에서 선물용으로 초콜릿을 많이 사 놓았었는데, 여기서 사도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냥 눈요기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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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브뤼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Markt 광장(마르크트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있는 그림같은 건물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스케이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에서는 매년 겨울이면 광장 한가운데를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하네요. 점심 시간까지 자유 시간이어서 근처에 즐비한 가게들을 돌아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짧은 바지에 스타킹만 신고 나온 동생에게 양말을 신겨야겠다는 할머니의 주장에 따라 신발 가게를 둘러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들어간 신발 가게에서 다행히 양말을 팔고 있어 양말을 한 켤레 사서 동생에게 신겼습니다. 이런 저런 가게를 구경하다가 전자제품 몰에 들어갔는데, 한 때 사고 싶었던 iPod touch를 포함한 다양한 전자 제품이 (꽤 싼 가격에)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별로 살 생각은 없어 이리 저리 둘러 보던 중에 발견한 DVD를 한 장에 1유로에 파는 일명 '떨이' 코너에서 동생이 원하는 DVD를 몇 장 집어 들어 나름 수확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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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에 삼성의 '코비' 선전물도 크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반가웠습니다. 대충 볼 건 다 본 것 같아서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멀리 가셨을까 하며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안오셔서 근처 가게를 다 뒤지는데, 이런 데에서 서로 잃어버리면 정말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더군요. 한참을 찾다가 멀리서 유유히 걸어오시는 우리의 멋쟁이 할머니를 보고 안도했습니다. 할머니도 우리를 잃어버리셔서 광장을 돌며 찾고 계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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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동생이 근처의 신발 가게에서 부츠를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한참 어떤 부츠를 살건지 실갱이를 했습니다. 저는 별로 관심도 없는 신발 가게에서 멀뚱거리며 있다가 겨우 하나를 골라서 계산하는 엄마와 동생의 뒤를 따라 점심을 먹으러 향했습니다.


점심은 어둑한, 마치 반군의 지하 소굴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 지하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싫은 분위기는 아니었고, 뭔가 비밀스럽고 아늑하달까요. 그렇게 점심을 먹고, 드디어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파리까지 거리가 꽤 되었기 때문에, 오후 내내 도로를 달려 저녁에 드디어 (말로만 듣던) 프랑스 파리에 발을 디뎠습니다.


파리에서는 파리 전문 가이드분께서 가이드를 대신 해 주시게 되었는데, 내일 있을 루브르 박물관 견학을 위한 사전 교육을 해 주시기 위해 미리 합류하셔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은 오랜만에 한식으로,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작은 한식당이었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 건지 정말 맛있었습니다. 유럽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아 지친 사람들에게는 정말 오아시스 같았을 것입니다. 식사 후 식당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 사진들을 영사기로 띄워 주시며 가이드 분께서 작품 해설 및 감상 포인트를 하나씩 설명해 주셨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하나를 돌아보려면 일주일 내내 다녀도 힘들다고 하시면서, 중요한 작품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어떤 관점에서 감상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확실히 설명을 듣기 전과 들은 후에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많았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더욱 내일의 루브르 박물관이 기대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짧게 파리 시내를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돈 후 호텔에 들어왔습니다. 도시 자체가 문화 유산이요, 관광지인 파리, 그 파리를 돌아볼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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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3일째 날의 이른 아침, 해가 미처 제대로 뜨기도 전에(사실 해는 8시도 넘어서 뜨기 때문에 이른 시간은 아닙니다만) 호텔을 나서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Amsterdam)이었습니다. 운하의 도시로 알려져 동화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도시의 전형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암스테르담에 직접 발걸음을 옮길 때의 기분은 정말 설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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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암스테르담의 중심지, 담 광장(Dam square)에서 멈췄습니다. 새해 첫날의 아침이라 그런지 정말 썰렁했습니다. 가장 큰 건물도 공사중이어서 활력 넘쳐야 할 광장이 뭔가 삭막했습니다.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국립 기념비 주변은 온갖 쓰레기로 넘쳤는데, 전날 한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것을 축하하며 사람들이 먹고 마신 흔적이라고 합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계속 생각하는 것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정말 편하게 세상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원래 담 광장은 큰 백화점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많아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때가 때인지라 모든 백화점과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도 없어 별 수확 없이 장소를 옮겼습니다. 골목을 따라 잠깐 이동하자 드디어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어두운 골목 대신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모든 길이 물을 끼고 뻗어 있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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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유럽풍 건물과 물가의 나무, 그 멋있는 풍광을 실컷 감상하고 점심 식사를 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은 담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함께 한 가족들은 모두 유럽 음식에 아직도 불만을 표하고 있었지만, 저는 매 끼니가 기대되었습니다. 원래 타국의 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지의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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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나오자마자 먹기 바빠서 사진 찍는 것을 깜빡 하고 있다가 조금 먹은 뒤 뒤늦게 찍은 것입니다. 살짝 먹은 자국이 있네요. 전채로는 감자 튀김과 야채가 나왔고, 주 요리로는 생선이 나왔습니다. 부드러운 생선을 크림 소스로 마무리한 조금 독특한 생선 요리였습니다. 살짝 느껴지는 허브향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도 이 요리만큼은 맛있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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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는 생크림을 얹은 과일이 나왔습니다. 깔끔하게 식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일정은 드디어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보트 탑승이었습니다. 보트 탑승은 다소 비싼 옵션 상품이었지만, 암스테르담에 와서 운하를 빠트리면 안되기에 함께 했던 일행 대부분이 보트에 탑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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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 로 본 암스테르담의 모습입니다. 노란 별로 표시한 곳이 처음 버스가 멈춘 담 광장입니다. 담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도시 전체가 부채꼴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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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보트입니다. 낮은 1층짜리 천장이 있는 모터 보트였습니다. 후미에는 천장이 없는 부분도 있어 밖의 풍경을 더 자유롭게 볼 수 있었지만, 날씨가 추워서 저는 포기하고 배 안에서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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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건물 사이에 도로가 있는 대신 물이 흐르고 배가 떠다닌다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운하변에 있는 건물들에는 대부분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수상 교통도 꽤 많이 이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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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만큼 꽤 오래간 운하를 돌아다녔습니다. 40분 정도의 운하 관광을 마치고 배가 정박한 곳은 갓산 다이아몬드 공장(Gassan diamond factory)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가공 산업은 네덜란드의 가장 발달한 산업 중 하나라고 합니다. 갓산 다이아몬드 공장은 세계에서도 가장 큰 다이아몬드 가공 공장이어서, 일부러 견학도 많이 온다고 하네요. 들어가서 나누어주는 입장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위층에서는 한국인 직원분께서 공장 설명을 해 주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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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로 옆에서 실제로 다이아몬드를 가공하고 계시던 다른 직원분입니다. 중간에 가공중인 다이아몬드를 보여 주기도 했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 하나에 싸게는 몇 백에서 몇 천 만원까지 한다는게, 역시 보석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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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직원분께서 다이아몬드의 가공 과정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보석은 쉽게 탄생하는 게 아닙니다... 가공 과정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장소를 옮겨 본격적인 세일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공장에 견학을 온 것은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가공되는지 소개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이 세일링이 목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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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품질을 정하는 기준인 4C(Carat weight, Color, Clarity, Cut)을 자세히 설명하고, 다양한 다이아몬드를 종이에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같은 무게라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조그만 티끌 하나 때문에 가격이 몇 천 만원씩 차이나는 경우도 있더군요.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계셨으나, 다이아몬드 살 일은 웬만하면 당분간 없을 것 같은 우리 가족은 일단 그냥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어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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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들이 진열된 1층의 매장을 빠져 나와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곧바로 네덜란드의 또 다른 멋, 풍차를 보기 위해 떠났습니다. 일반적으로 '풍차마을'이라고 불리우는 잔세스칸스(Zoanse Schans)는 동화 속에서 그려질 법한 네덜란드의 모습이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풍차가 있었다고 하지만, 산업화에 밀려 지금은 관광용으로 몇 개만이 보존되어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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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세스칸스에 도착할 때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노을을 배경으로 한 풍차의 모습이 색다른 운치를 자아냈습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너무나 아름다운 배경에 모두가 사진을 찍느라 바빴습니다. 본래 특산품인 치즈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서 둘러 봐도 좋지만 새해 첫 날인지라 모두들 문을 닫은 덕분에 많은 시간을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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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가자, 정초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연 치즈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고소한 치즈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치즈를 조금씩 썰어서 맛을 보게 해 주고, 파는 가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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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먹는 체다 치즈부터 훈제 치즈, 매콤한 치즈, 야채 치즈 등 다양한 치즈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모두 너무 맛있어서(...) 다 사고 싶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6개 묶음으로 할인하는 것을 사서 가게를 빠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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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같은 나라, 네덜란드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벨기에로 향했습니다. 나라 간의 경계가 무색해서, 숙소를 벨기에에 잡고 네덜란드 관광을 한 후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는 일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외국이라면 너무 멀게 느껴지는 한국인으로서는 역시 적응이 안되는군요. 가는 길에 1958년 벨기에 국제 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인 아토미움(Atomium)을 멀리서나마 보고 지나갔습니다. 본래 전혀 일정에 없었던 것이지만,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버스 기사님께서 일부러 아토미움을 볼 수 있는 길을 택해서 지나갔다고 하시네요. 잠시 내려서 휴식도 취할 겸 아토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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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저녁 식사를 위해 전 날 갔었던 브뤼셀의 그항 쁠라를 다시 찾았습니다. 유럽에서의 중식-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좁았다고 합니다-을 먹고, 전 날 묵었던 숙소에 돌아가는 것으로 3일째의 일정은 마무리됐습니다.

남은 이야기
  1. 암스테르담이나 담 광장의 'Dam'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댐을 의미합니다. 운하의 도시, 암스텔 강의 범람하는 강물을 막기 위해 댐을 지은 자리가 지금의 담 광장이고, 이것이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 이름의 시효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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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중간고사가 끝나 있네요. 무려 대학 들어와서는 대학 생활에 관한 포스팅은 하나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일단은 공부에 신경을 쓰다보니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포스팅 거리는 정말 많은데,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고, 글감을 잡고 있노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조금 프리스타일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게 부담 없이 많이 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네요.


2월 1일에 개학을 했으니 이제 2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중간고사를 치렀으니 학기의 반이 지나간 것입니다. 학기 초에는 새터다, 동아리다, 동문 모임이다 해서 여기저기서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고, 조금 진정되나 싶으니 숙제가 밀려들어 정신이 없더니 곧바로 시험이 닥쳤습니다. 동아리는 두 개를 가입했습니다. IVF와 SPARCS인데요, IVF는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의 약자로, 전국적인 학생 선교단체이고, SPARCS는 KAIST 내 다양한 전산 서비스를 제작·관리·운영하는 동아리입니다. 사실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을 조금 망설였습니다. 글쎄요, 정확히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저항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입한 동아리가 두 개라 학기 초 MT도 2번 다녀왔습니다. MT는 정말 체력을 완전 소진시키는 것 같습니다. 술 때문만은 아닌게, IVF MT에서는 술이 없었지만 역시 며칠간 체력적 파장이 심하더군요. SPARCS MT가 끝나고는 거의 이틀간 제대로 먹지를 못했고 말입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제 시간표를 보고 축복받은 시간표라고들 합니다. 금요일이 공강이어서 주말에 하루를 더해서 쉴 수 있는게 가장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수업이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힘들 수도 있지만,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것 같아서 저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강의와 강의가 붙어 있다거나 하는 시간표가 아닌 건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새내기 세미나 1학점을 포함해서 총 15학점을 듣고 있는데, 시간적인 압박이 있다거나 숙제의 부담이 크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할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계속적으로 할 일이 있는 게 사람을 좀 더 활기차게 만든다고 할까요. 그 정도가 심하면 힘들겠지만, 힘들 정도는 아니라서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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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수첩 앞에 붙어 있는 시간표입니다. 월요일이 조금 바쁘고 낼 것도 많지만 그것 빼고는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수업보다도 퀴즈와 연습반의 부담이 더 큰데, 다행히 매일 수업이 적어도 4시 전에는 끝나서 퀴즈를 볼 때까지 시간이 꽤 비어 그 동안 공부를 하면 웬만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선배들은 시험 끝나고 집에 가는 게 설 이후 처음이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수도 없이 올라간 것 같습니다. 가족들을 볼 수 있으니 좋은 것이라면 좋은 것이겠지만, 교통비도 만만찮아서 사실 조금 부담이 되긴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치아 교정 초기라 수시로 치과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금요일이 공강이어서 목요일 저녁이나 금요일 아침에 올라가서 금요일에 진료를 받고, 다시 돌아오는 스케쥴이 가능합니다. 지난 주에도 치과 진료를 받았고, 이번주에는 올라가지 않지만 다음 주와 그 다음 주에 예약을 해 놓았으니 올라가야 합니다...;


두서 없이 쓰다 보니 다음에 어떤 내용을 써야 할 지 모르겠네요. 또 시간이 나면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도 올리고 싶은데 카메라 충전기를 잃어버려 찍지를 못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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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묵었던 모든 호텔에서 바디 샴푸를 따로 찾아 보긴 힘들었습니다. 다만 머리 샴푸 겸 바디 샴푸인 '다용도 샴푸'로 머리도 감고 몸도 씻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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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조명이 어두워 화질이 최악이네요. 'hair and body gentle wash'라고 쓰여 있습니다. 벽에 걸려 있고, 가운데를 눌러 짜면 아래에서 샴푸가 나옵니다. 아무래도 머리 전용 샴푸가 아니다보니 감고 나서 머릿결 느낌이 썩 좋진 않습니다만, 전 별로 신경 안 쓰기 때문에 잘 사용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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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떠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쉬워서 한 장 찍어봤습니다. 카드키를 꽂아야 층 버튼이 눌리는(로비는 꽂지 않아도 눌립니다만) 엘리베이터입니다. 이 호텔만 이런 시스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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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와 버스에 타서 한 장 찍었습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아 매우 이른 시간으로 생각되겠지만, 사실 EXIF 정보에 의하면 아침 8시 2분에 찍은 사진입니다. 8시 반이 넘어서야 제대로 앞이 보일 정도로 해가 떴습니다. 위도가 높아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독일의 겨울이라고 합니다. 여름에는 반대로 하루 종일 환해서 피곤하다고 하네요.


원래 일정은 바로 쾰른 성당으로 향하는 것이었지만, 독일에 와서 로렐라이 언덕을 안 보고 가면 섭섭하다는 가이드의 말에 로렐라이 언덕을 들르기로 했습니다. 로렐라이, 뭔가 어릴 때부터 많이 듣던 이름이고, 이리야의 테마송 로렐라이도 익숙하지만 정작 로렐라이 언덕이 어디에 있는지, 그 전설이 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전설이라 함은 대략적으로 뱃사공들이 인어들의 노래에 홀려 빠져 죽었다는 것이라고 하는데, 물길의 커브가 심하고 안개도 짙은데다가 언덕이 시야를 가려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에 그런 전설이 생겼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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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아름다운 언덕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안개가 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요. 렌즈에 계속 물방울이 맺혀 사진 찍기도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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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배는 많이 다녔습니다. 끊임없이 화물을 실은 배가 왔다갔다 했는데, 옛날에도 강물에 크고 작은 배가 많이 다니면서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가이드의 말처럼, 기온이 그렇게 낮진 않았지만 워낙 습도가 높아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동안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국의 추위와는 또 다른 느낌의 추위 때문에 오래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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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 언덕을 떠나 점심식사를 할 식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는 사진처럼 산 위에 고성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 지방 영주나 귀족들이 살던 곳인데, 현대에 와서는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기보다는, 영화 촬영이나 부자들의 결혼식 등에 대여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런 성에서 결혼식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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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처럼 유럽에는 두 개의 버스를 이은 길이 2배의 버스가 많이 다닙니다. 일반적으로 타는 시내버스는 대부분 2중(?) 버스인 것 같았습니다. 볼 때마다 저런 버스를 운전하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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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강물을 찍은 건 아니고 왼쪽에 위에 있는 깃발이 꽂혀 있는 성 같이 생긴 것을 찍은 것입니다. 원래는 다리의 한 쪽 기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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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한 쪽 기둥입니다. 2차 대전 때 다리는 파괴되고, 다리를 받치던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흔적을 빨리 빨리 지우든 데 반해서 유럽을 돌아다니다 보니 2차 대전의 흔적이 꽤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식사는 대부분 코스 요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애피타이저, 수프, 본 요리, 디저트 순입니다. 추가할 경우 샤베트나 샐러드, 빵 등을 곁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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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일반적인 식사라는 소시지와 독일식 김치, 으깬 감자입니다. 독일식 김치는 'Sauerkraut'라고 하는데,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입니다. 한국 김치의 매운 맛은 없지만 묵은지 비슷한 게 꽤 맛있었습니다. 소시지도 맛있었는데, 가족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결국 제가 다 먹었습니다.


다음 방문할 곳은,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는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이었습니다. 가장 큰 성당은 울름에 있는 뮌스터 교회이고, 쾰른 대성당은 독일에서는 두 번째로 큰 성당이며, 세계적으로는 세 번째로 큰 규모의 고딕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처음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완공할 때까지 무려 6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오랜 기간을 두고도 이런 건물을 완성할 수 있는 유럽인들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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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독일 특유의 겨울 날씨의 전형을 보여 주듯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짙은 안개가 껴 있었습니다. 성당의 웅장한 외관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계속 렌즈에 빗물이 떨어지고, 김이 서려 좋은 사진을 건지기는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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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입니다. 수백년 전에 이러한 규모의 건물을 어떤 건축 기계의 도움도 없이 사람의 힘으로 건설했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규모는 사진보다 직접 볼 때 훨씬 잘 느껴집니다. 사진에서도 정문 앞의 사람들과 문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그 규모가 짐작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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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한 쪽 벽면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입니다(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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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쪽에 걸려 있는 십자가입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빛과 어우러져 너무나 멋있었습니다. 동방박사의 성물과 게로의 십자가라는, 쾰른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결국 제대로 된 사진은 못 찍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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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성당에는 모두 사진과 같이 촛불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냥 기념 삼아 하나 놓고 가는 것인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옆에 있는 헌금함에 2유로 정도를 넣고(성당마다 다릅니다) 초를 '사서' 불을 붙여 놓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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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스케일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 높이의 지붕은 지금 기술로도 건축하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고 하니, 당시 성당 하나를 짓는 데에 들어간 노력과 정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노력만 가지고는 실패했을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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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서면서 한 컷 더 찍어봤습니다. 고딕 양식 특유의 높이 솟은 첨탑이 안개에 가려 인상적입니다.


이제 독일을 뒤로 하고 다음 여행지인 벨기에로 향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벨기에까지는 네덜란드를 통해서 갔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는데 비행기를 타지 않고 남의 나라를 마구 지나 다닌다는 것이 (거의)섬나라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는 참 신기했습니다. 유럽은 더욱이 유럽 연합 가입국끼리는 여권 검사도 하지 않아서 국경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정말 유럽이 이제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빨리 한국에서도 육로로 다른 나라 여행을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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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브뤼셀에서 버스가 멈춘 곳입니다. 브뤼셀의 Notre Dame이라고 합니다. Notre Dame은 프랑스어로 Your lady라는 뜻인데, 성모 마리아를 위해 세우는 성당을 모두 Notre Dame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 중 유명한 게 프랑스의 Notre Dame de Paris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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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당을 뒤로 하고 골목을 통해서 도착한 곳은 브뤼셀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Grand-Place(그항 쁠라)입니다. 시청사와 많은 고대 건축물들이 광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 늘어서있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화려한 조명 속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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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럽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수백년씩 된 건축물들이 도시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Grand-Place에 있는 건물들도 모두 옛 귀족의 집으로, 지금은 상점이나 관청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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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Place에서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골목 한 쪽 벽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입니다. 브뤼셀에 오면 꼭 보고 가는 명물이라고 하여 대단한 걸 기대하였지만, 우리 나라에서 아무 곳에나 가면 있는 오줌싸개 동상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의 3대 '허무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네요. 나머지 두 개는 이미 독일에서 보고 온 로렐라이 언덕과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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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와플이 그렇게 맛있어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벨기에 하면 와플이라 꼭 먹어 보고 싶었지만 가게 앞의 줄도 길고 법도 먹어야 해서 기회를 미루다 미루다 결국 못 먹어보고 돌아왔습니다. 와플을 먹어 보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들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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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주변 상가를 둘러보았습니다. 들어간 상점가는 흡사 우리 나라의 지하 상가처럼 여러 가게들이 늘어서서 옷이나 가방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유럽의 물가에 비해서 싼 편이어서 기념으로 동생 털모자를 하나 샀습니다.


약속 시간이 되었지만 일행이 돌아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안 온 사람들을 남겨두고(가이드가 나중에 따로 데려 오기로 하고)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녁은 중식이었습니다. 유럽까지 와서 중식을 먹는 게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밥은 잘 먹었습니다. 다시 버스가 서 있는 Notre Dame 성당 앞으로 와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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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던 유럽 여행을 드디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보름 이상 일정으로 여유있게 떠나고 싶었지만 서로 바쁜 관계로 짧게 일주일 일정으로 베네룩스 3국 + 프랑스 + 독일만 투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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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을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처음 가는 유럽인데다가 유럽에서는 영어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 일정이 짧다는 점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배낭여행보다는 패키지 여행이 훨씬 효율적이고 유용할 것 같아 패키지로 가기로 했습니다.

공항에서 할머니와 합류하여 아시아나 OZ501편에 탑승했습니다. 동생은 어디서 읽었는지 고추장 볶음이 기내식으로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만두와 구운 야채에 치즈를 뿌린, 무슨 파스타라고 하던 요리가 나왔습니다. 전 맛있게 잘 먹었는데 다들 맛이 없다더군요. 스낵도 먹고 영화도 보면서 1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Frankfurt Am Main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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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두 개의 Frankfurt라는 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도시를 구분하기 위해 Main강변의 Frankfurt를 Frankfurt am Main, Oder강변의 Frankfurt를 Frankfurt an der Ode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기내에서 계속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공항에~'라고 방송이 나와서 '암 마인'이 공항 이름인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독일의 날씨는 우리 나라와는 정반대라서, 여름에는 건조하고 겨울에는 습하다고 합니다. 여름의 건조한 날씨마저도 우리 나라 겨울 만큼은 되지 않아서, 언제나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오래 사신 할머니 말씀도, 독일의 날씨 하면 언제나 구름끼고 우중충한 것밖에 생각나지 않으신다고 하시니, 그런 면에서는 참 살기 안좋은 나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도착한 날도 약하게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이 껴 있었습니다. 썩 기분 좋은 날씨는 아니더군요.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뢰머 광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시청과 성당, 여러가지 가게들이 모여 있는 뢰머 광장은 프랑크푸르트에 오면 꼭 한 번씩 들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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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도 화려하게 밝혀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 덕분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시청입니다. 과거 귀족이 살던 집인데, 이후 개조하여 시청사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옛 건물을 활용하여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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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근처의 상점만 죽 둘러봤습니다. 독일의 특징적인 상품이라면, 역시 렌즈나 주방용품일 것입니다. 기념품으로는 도자기 인형도 많이 팔고 있다고 합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살 엄두는 못내고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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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내부가 예뻐서 한 장 찍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독일어로 사진 찍어도 되냐고 주인한테 물어보셨습니다. 오래 되셔서 다 잊어버리셨다는데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신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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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한 장 찍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도로 한가운데 사진과 같이 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이 위를 전차나 전기 버스가 다닙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없어진 전차가 남아 있는 것은 전차를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날 묵은 호텔은 ibis 체인의 호텔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체인이어서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부족한 것은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원하는 층 버튼을 누를 때 카드키를 꽂아야 한다는 점이 한 가지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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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 안의 TV입니다. LG를 보니 반가워서 찍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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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대항 합창대회

곰솔제의 가장 중요한 무대 중 하나가 바로 반 대항 합창대회가 아닐까 한다. 모두가 참여하기 때문이고, 1년 동안 함께 했던 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작년의 합창대회도 비록 상은 타지 못했지만 매우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올해도 열심히 해서 즐거운 추억도 만들고, 기왕이면 상도 타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분위기였다. 1학년 때에는 축제 준비 기간 동안 수업을 하기 때문에, 수업을 하기 싫은 애들은 수업을 하지 않을 구실을 합창 연습에서 찾았다. 덕분에 매 시간 거의 합창 연습을 했고, 연습할 시간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반면 2학년은 수업은 커녕 각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자유로운 시간을 합창 연습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일부는 '원래 축제는 1학년들이 주인공'이라는 인식까지 가지고 있어서 다 함께 열심히 해보자 하는 기합이 잘 들어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다행히 반장, 부반장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 주어서 곡 선정부터 편곡, 연습까지 잘 진행된 것 같다. 원래 'We are all in this together'를 하려고 했지만 다른 반에서 선수를 쳐 버리는 바람에 다시 'Honey honey'로 바꿨다. 그러나 'Honey honey'는 합창곡보다는 솔로곡의 느낌이 강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다른 후보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Honey honey'를 편곡해서 합창 버전으로 만들어 하기로 했다.

편곡은 다른 반의 친구들이 도와줬다. 반장이 Note worthy composer로 악보를 작성하고, 하루에 1시간 정도 연습했다. 마지막 이틀 동안 겨우 피아노가 있는 구면학실을 차지해서 피아노와 맞춰 볼 수 있었으니 참 촉박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그래도 안무도 맞추고 마지막 퍼포먼스까지 짜서 나름대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순서는 모든 반 중 가장 마지막이었다. 2학년 4반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추첨에 의한 우연이다. 덕분에 다른 반 무대를 모두 볼 수 있었고, 보면서 왠지 희망은 줄기는 커녕 더 커졌다. 작년에도 그랬고, 아무래도 1학년이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무대를 보여 줘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도 1학년 무대를 보면서 저 정도는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는 것이었다. 2학년 다른 반들도 조금씩 시원찮아 조금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1등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반의 무대. 지정곡 '어머니'는 연습할 때부터 별로 걱정이 없었던 만큼, 무대에서도 완벽하게 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자유곡 'Honey honey'였다. '어머니'가 끝나고 대형을 바꾸어 자유곡 합창이 시작되었다. 나는 코러스 파트였지만 사실 코러스 파트 연습할 때 거의 같이 연습을 안해서 음을 제대로 못 잡고 알토와 코러스를 대충 섞어 부른 것 같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간주 부분. Honey honey에는 중간에 30초나 되는 긴 간주가 두 번 나오는데, 그 중 하나를 없애고 하나에는 율동(?)을 넣기로 했다. 율동이라는 게 상당히 익살스러워서 임팩트가 강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마지막 듀엣 파트. 어쩌다가 내가 듀엣 중 한 명을 맡게 되었고, 연습 때 제대로 음을 잡지 못해 걱정했지만 다행히 어긋나지 않게 마무리를 했다. 작년의 1학년 2반을 베낀 듯 한 하트 퍼포먼스 또한 강한 임팩트를 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무대 연출에서 최고점을 받았고, 당당히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많이 부족했던 연습에 비해 결과가 너무 좋아 사실 좀 얼떨떨하긴 해도 1학년 때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다. 2학년 4반 모두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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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디디야 합창

여디디야의 연중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축제 무대이다. 여디디야에 출석하는 친구들과, 출석하지 않더라도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이 모두 함께 곰솔제 인곽인의 밤에서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다. 동아리 멤버의 개념이 모호한 여디디야를 하나로 묶어 주는 중요한 무대이다.

재작년에는 핸드벨 공연을 했다고 하고, 작년에는 캐럴 메들리를 합창했다. 올해의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는 15기 임원,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 다시 핸드벨 공연을 할까, 캐럴을 부를까 하다가 결국 우리가 1년 동안 함께 불렀던 찬양을 재구성해서 무대에서 보이는 것이 1년 활동을 가장 잘 압축하는 것이겠다 싶어 모두가 잘 알 만한 곡 다섯 곡(Miracle generation, Jesus generation, 성령의 불타는 교회, 영광 높이 계신 주께, 부흥 있으리라)을 골라 메들리로 엮었다. Lukas 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성부까지 나눈 뒤 2주 가량을 남겨 놓고 연습을 시작했다.

많은 학생들이 여디디야 외에 다른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모두가 알 만한 찬양을 골랐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쉽게 익힐 수 있는 원음 멜로디(High part)로 부르고,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화음(Low part)을 넣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항상 연습할 때에는 High part의 목소리가 부족해서 실제 찬양할 때 원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연습에 참가하지 못했던 High part가 모두 모여서 맞춰 보니 적당히 균형이 맞아 제법 소리가 괜찮았다.

원래 항상 지휘는 짱이 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짱이 여자여서, 그것도 여자 중에 목소리가 가장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어서 여자 목소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절대 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도 Low part에서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내가 지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축제 당일이 되었다. 먼저 따로 준비한(거의 연습은 하지 않았지만) 임원들끼리의 찬양이 있었다. 곡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지휘 없이 임원 찬양을 마치고 나만 혼자 내려와 지휘석에 서고, 나머지 학생들이 무대로 올라와 대형을 갖췄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계속 불안했던 박자가 또 문제였다. 처음에 너무 느리게 들어가버린 것이다. 박자를 되돌리느라 애를 썼지만, 한 번 늦게 들어가버린 피아노를 지휘가 어떻게 하는 것은 무리였나보다. 조금 지나자 적당한 박자가 되었고, 그렇게 무사히 공연이 끝났다.

모두들 다른 동아리들과 겹치고, 1학년들은 각종 연구활동때문에 바빠서 시간 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짱은 같이 연습하자고 하면서도 미안해했다. 나는 연습이 부족한 것 같아 한 번만 더 연습하자고 하면,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일찍 보내자고 해서 결국 보낸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래도 결국 그랬기 때문에 모두 기분 좋게 끝까지 연습해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함께 해준 임원들과 여디 친구들께 고맙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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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뮤비

인곽에는 K뮤비라는 전통이 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년 KAIST 합격생(일명 2학년 K반)들이 함께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여 곰솔제의 시작을 장식하는 것이다. KAIST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에는 합격했을 때 K뮤비를 어떻게 찍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막상 발표가 나고 나니 들떠서 K뮤비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발표 다음 날, 강영우 선생님께서 나를 포함해 KAIST 합격생 세 명을 부르시더니, K뮤비 촬영을 맡기시는 것이었다. 축제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일단은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왔지만, 막막한 게 사실이었다.

주말에 네이트온으로 회의를 해서 노래는 리쌍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로 정하고 주인공과 스토리도 대충 정했다. 그러나 재미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있어서 결국 화요일에 다시 회의를 하여 노래를 에픽하이의 '따라해'로 바꾸게 되었다.

뮤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모든 신이 야외 신이다. 수요일부터 촬영에 들어갔는데, 하늘의 장난인지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한다. 평소처럼 건물 안에 있었으면 그냥 추운 날인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칼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촬영을 하고 있자니 우리 나라도 참 추운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금요일까지 모든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주말에 악마의9시저주 님께서 대충 편집을 해 주셔서 월요일 상영 전까지 겨우 완성품을 낼 수 있었다. 6시에 인곽인의 밤이 시작해서 처음을 장식하는 것이 K뮤비인데, 아마 6시 1분 정도에 최종본 렌더링을 끝마친 것 같다. 부랴부랴 외장 하드에 옮겨 방송부 컴퓨터로 복사도 하지 못하고 재생을 했다.

다행히 반응은 꽤 좋았던 것 같다. 원작 뮤비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똑같이 만들었다는 평을 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특히 주연을 맡아 준 세 친구(타블로, 투컷, 미쓰라 진 역)의 표정 연기가 모두에게 큰 웃음을 준 것 같다. 처음엔 많이 막막했던 게 사실이지만, 모두 각자 축제 준비하느라 바쁜 가운데 조금씩 희생해서 좋은 작품, 즐거운 추억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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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최종 합격자 결과가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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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과학고 생활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 정말 좋습니다. 입학 할 때부터 KAIST가 목표였고, 간절히 바라왔던 만큼 합격 통지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KAIST 생활을 포스팅할 수 있게 되었네요.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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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KAIST 2차 면접 후기

Record 2009/11/30 22:40

포스팅 을 마치고 바로 잠을 청했으니 7시간 정도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5시 20분 경부터 조금 추워서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한 것을 빼면 말이다.

7시에 경하 호텔 2층의 한식당에서 미리 예약을 해 놓은 설렁탕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맛은 제법 괜찮지 않았나 싶다. 김치가 많이 맛없었다고 하지만, 원래 밖에서는 김치를 잘 먹지 않는 터라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
7시 20분 호텔을 떠나서 금세 KAIST에 도착했다. 면접은 세 고사장에서 나누어 보았지만, 일단은 차는 창의학습관 터만홀 앞에서 모두를 내려줬다. 창의학습관 앞에는 선배들이 플랜카드를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은근히 학교간 경쟁이라, 얼마나 요란하게 환영(?)해 주는지를 놓고 신경전까지 있었다. 멋있게 플랜카드를 인쇄해서 붙여 놓거나, 문 앞에 양쪽으로 서서 교가를 부르는 학교들도 있었지만, 인곽 선배들은 보다 현실적으로, 신입생 환영회 장소와 시간을 가르쳐 주셨다.

면접 대기장소인 터먼홀에 8시 20분까지 입실하여 출결 확인을 했다. 그러나 왠지 출결 확인부터가 GIST에 비해 뭔가 많이 미숙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GIST가 10분 만에 깔끔하게 인원 확인과 명찰 배부를 완료한 것과는 대비되게, 30분이 넘도록 결시자가 파악되지 않아서 쩔쩔 맨 것은 이미 몇 번이나 입시를 치러 본 KAIST답지 않아 조금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9시부터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에 30분씩. 나는 25 면접실에서 세 번째로 면접을 치르게 되었다. 10시 40분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에 면접실로 들어갔다. 공지에 의하면, 영어 면접 5분 후에 공통 문항 10분과 개별 문항 10분을 진행하고, 마지막 5분에 자기 역량 발표 시간을 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대략의 시나리오를 짜서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돌연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셔서 사실 조금 당황했다.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따로 준비한 것도 아니고, 결국 내용이 영어 자기소개와 거의 같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는 수 없이 대략의 영어 자기소개 내용으로 짧게 답변을 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이 오고 갔다. 질문의 내용을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보류하도록 하겠다. 입시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영어 면접은 맨 마지막에 있었는데, 자기소개와 제시된 그림(도표)을 설명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졌다. 그러나 개인 역량 발표 시간은 따로 주어지지 않았다. 본래 5분 동안 발표할 내용을 대략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영어 면접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제언을 한 번 해 보라고 하셔서, 어느 정도 길게 해야 되냐고 여쭈니 최대한 짧게 하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준비해 간 것을 최대한 압축해서 3문장 정도로 짧게 하고 나왔다.

면접후 대기실에서 또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12시 40분쯤, 모든 면접자의 면접이 끝나자 드디어 그룹 토론을 위해서 25 면접실에서 면접을 치른 6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한성과학고, 서울과학고, 전북과학고, 경기과학고, 장영실과학고에서 온 다섯 명의 친구들이었다. 다행히도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이 없어서 좀 편하게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토론 주제 또한 밝히기 힘들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한 번 연습을 해 봤던 주제라서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같이 토론한 친구들 모두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 주어서 토론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도 참 다행이었다. 학교에서 연습할 때보다도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여러 의견이 오갔다.

같이 토론한 친구들과 모두들 내년에 캠퍼스에서 보자는 인사를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들리는 말로는 KAIST의 계산 실수로 많은 수가 서울대로 빠지는 바람에 매우 낮은 경쟁률이 형성될 것이라고 한다. 운이 좋다면 정말로 같이 토론을 한 다섯 명 모두 내년에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인곽에서 같이 시험 보러 간 친구들과 선배님들 모두 다 같이 합격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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