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과 학교

Opinion 2009/07/24 22:29
최근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MB악법이라는 이름의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해를 넘기고도 반년이 지났는데도 진척이 없다가 결국 얼마 전 일명 미디어법이 직권 상정과 난장판 투표 속에서 통과되었다. 그마저도 부정 대리 투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 쪽에 책임을 물으려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도 잘 한 쪽은 없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한 발씩 양보하여 절충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정권 획득이라는 목적에만 매달려 그 어떤 타협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국회 파행과 국민의 불신을 야기했다.

그렇다고 19대, 20대 국회에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토론을 통한 타협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로 자란 지금의 세대가 비단 정치판에서만 제대로 된 의사 결정 과정을 보여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는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라고 말하고 싶다. 교육, 지도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말하자면, 학생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껏 해야 학교 시설 개선에 대한 요구 사항을 학생들로부터 수합하여 교사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있을 뿐, 교칙 수정 혹은 수정 요구의 권한도, 중요 행사의 일정 결정 권한도 없다.

필자는 아직 다니고 있는 학교의 교칙을 본 적이 없으며, 아마 학생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학기 초에 받은 것이라고는 '학생 생활 규범'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교칙의 일부로 보이지만 이 역시 학생 징계시 사전 처벌 기준 공개의 근거로서 사용하려는 목적 이상의 의도는 찾을 수가 없다. 교칙을 모르는데 교칙에 대해 수정안을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누군가 만들어 놓은 교칙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서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수정안을 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져 버렸다.

학생 생활 규범만 해도 수정할 곳은 수없이 많다. 일단 학생회에서 규범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한 부분이 없다. 게다가 학생 징계시 지나치게 교사의 자율을 보장했고, 처벌 기준마저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특히 '교사 지시 불이행'이라는 벌점 항목은 결국 교사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조항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행동에 대해 그 행동에 해당하는 벌점 항목과 교사 지시 불이행 항목을 중복하여 처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시간 규정 같은 경우 교사 임의로 시간을 변경하거나 5~10분씩 일찍 기준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충분히 교사로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미 너무 길들여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교사로서 더욱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학생들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또한 적당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100% 교사의 자율과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회를 소집하여 새로운, 혹은 변경된 규칙의 의도와 목적을 알리고 필요할 경우 투표 등을 통하여 확정되면 명문화하는 절차가 도입되어야 한다. 확정된 규칙의 시행에 있어서도 처분에 대한 불만 제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을 반드시 열어 두고, 불만이 제기될 경우 이를 심의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야 교사마다 다른 처벌, 이중 처벌 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들을 잘 홍보하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충분히 공감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늘 선생님께서 정해 주신 룰이 있었다. 불만이 있더라도 그냥 참고 잘 따르면 착한 학생 소리를 듣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결코 누군가 룰을 정해 주지 않는 곳이다. 직접 룰을 만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한 번도 누군가와 룰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의견 조율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결국 싸움판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학교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학교 민주주의 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가장 먼저 학생회를 살리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공부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도 교육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정치를 위한 밑거름이고,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의사 소통 능력의 배양이다. 수학 문제 몇 문제 더 푸는 것보다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이 지킬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더 필요한 능력이다.

학교의 학생 회장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은 공약을 몇 개씩 건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 중 대부분이 학교 시설 개선이라는, 너무나 수준 낮은 공약들에 머문다는 것이다. 올해 선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약은 '학급회의 정상화'였다. 그 후보의 당락을 떠나서, 그러한 공약이 나왔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모든 학교에서 '정수기 설치', '커튼 교체' 등의 공약에서 '학생회 정상화', '교칙 공개', '처벌 심의 기구 설치' 등의 한 차원 높은 공약으로 바뀌어야 한다. '두발 자유'를 선생님께 백 번 외치는 것보다는 학생회를 정상화시키고 진지한 토론과 의사 교환을 통해 교칙 수정에 합의하는 방법이 훨씬 빠르고 현실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만든 규칙은 누군가에 의해 강요당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규칙이기에 더욱 잘 지키게 될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하루 빨리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그들이 지킬 규칙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잡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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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위는 끝났다.

이명박 정부가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가두 시위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전의경의 폭력 진압이 시작되었고 살수차까지 동원되었다. 누가 선동했는가? 바로 MB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 없었던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한 명의 인원이라도 더 보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학생이기에, 지금 시위에 동참하는 것보다는 공부해서 나중에 내 목소리에 무게를 더하는 일이 이 나라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조언에 따라서 공부에 힘을 썼다. 그래도 현장에서 폭력경찰에 대항하며 열심히 구호를 외치시는 분들을 보며 지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죄송하기도 했다.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 학생 신분에 맞으면서도 조금이나마 목소리를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에서 다시 블로그의 '글 쓰기' 버튼을 눌렀다. 조그만 개인 블로그에 지나지 않지만, 매일 찾아주시는 300명에게라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고 싶어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이 이렇다.
"아직 몇 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섣불리 탄핵을 외치면 안되지. 조금만 더 지켜보자."
"분명 협상에 문제는 있지만 들고 일어날 일까지는 아니지 않느냐."
"쇠고기 정도는 희생을 해야 다른 제품의 수출에 차질이 없지 않겠느냐."


나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아직 몇 개월이니까. MB도 진정 매국노 심보가 아니라면, 진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생각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한 달째이다. 지금 거리에 나온 시민들 모두가 그런 심정일 것이다. 촛불 문화제 정도로 국민들의 뜻을 알아주길 바랐다. 평화적인 의사 전달에 응답이 오길 바랐다. 그러나 MB는 국민을 배반했다. 담화문에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촛불시위를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나섰다.

결국 민심은 폭발했다. 평화적 촛불집회를 끝내고 해산을 해야 할 시민들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거리로 나섰다. 경찰과 대치했고, 폭력 진압까지 이어졌다. 아기를 업은 엄마, 임산부, 노인에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연행하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하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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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이다. 기숙사라는 조건 때문에,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인천이라는 지역적 제약 때문에 시위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변명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이 글을 보시는 다른 분들이라도 참가해 달라고 호소한다. 머릿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 지금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가장 절실한 것이다. 모두 하나가 되자. MB가 물러나는 그날까지.

이명박탄핵투쟁연대 : http://cafe.daum.net/antimb
(가입해서 집회 일정 및 정보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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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필자의 블로그에서 일명 '대박'을 터뜨린 포스트가 있었다. 바로 심슨에서 발견한 MB 이다. 당시 MB가 당선되고 아직 취임하기 전,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서 개혁을 한답시고 이런 저런 일들을 벌릴 당시에 쓴 글이다. 혹시 읽어보지 못하신 분은 먼저 읽어 보시기 바란다.

당시에는 Burns의 물고기, Blinky는 한반도 대운하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슨은 더욱 정확한 예언을 한 것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Blinky는 누가 뭐래도 미친소를 생각나게 한다. Burns가 TV Show에서 눈 세 개짜리 물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모습은 미친소를 갖다 놓고 먹어도 된다고 하는 MB를 풍자해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Burns는 자신의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을 속이고 대대적인 사기 행각을 폈다. 도대체 MB는 무엇을 위해 국민에게 미친소를 못 먹여서 안달인 걸까? 우리 나라에 미친소를 팔게만 해 주면 미국에서 평생 연금 받으며 편히 살게 해 준다고 약속을 받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걸까. 2MB의 한계인 걸까?

서울시 교육감이라는 사람은 청소년들 배후에 세력이 있다고 하면서 순수히 나라와 국민 건강을 우려해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마저 모욕하고 있다. 필자 또한 미친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단지 배포나 탄핵연대 회원 모임에 참가했고 후일 있을 집회나 시위에 가능한 참가하려고 계획중에 있다. 배후가 있어서인가? 필자 뿐만이 아니라 필자와 함께 참가하는 모든 학생들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참가하고 있으며 미친소와 MB에 대한 인식도 바로 서 있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이다. 그런 청소년들을 싸잡아서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세력 싸움의 노리개 정도로 취급하는 것에 분노를 표하는 바이다.

필자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회 참가의 기회가 적어서 학교에 공문이 내려 오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집회 참가를 제한하라는 교육청의 공문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의 제제가 잘 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세월이 심판해 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30년 전 우리 나라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의 주도 세력은 학생들이었으며, 그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정권 수립의 일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고등학생들의 본분은 공부이다.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학생이기 전에 국민이다.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집회에 참가하는 것조차 제한하는 것은 민주적 인재 양성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교육 모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부가 첫 번째 할 일이라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0번째 할 일이기 때문이다.

심슨의 예언대로라면 MB는 당선되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었다. 선거철에 이미 경고된 MB의 만행을 이제 와서 실감하고는 이제서야 탄핵 얘기를 꺼내고 있다.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 이 정도로 나라를 망가뜨렸는데 탄핵 사유 어떤 것에든 하나는 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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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출범이 한 달을 넘었다. 신문마다 헤드라인에 '인수위'라는 말이 빠지면 서운할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수위의 한 달이었다.

지금까지 인수위는 여러 가지를 발표했다. 영어 교육의 강화, 대입 자율화, 정부의 대대적 개편이 가장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 개혁 방안이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개혁도 좋지만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모든 것을 뜯어 고치려고 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말도 안되는 개혁안을 내놓는 인수위의 모습은 이명박을 지지하던 사람마저 정이 떨어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인수위에 대해 말을 하자면 할 말은 많지만, 필자는 이명박 당선인은 과연 국민을 섬기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묻고 싶다. 이명박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노라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자면 그의 태도는 국민을 섬기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가끔 보면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정책을 수정하면 '강한 추진력'이라는 의미에 손상이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정책부터 내놓고 어떤 비판이 있어도 일단 밀고 나간다. 이것이 진정한 추진력인가? 그렇다면 독재자들은 엄청난 추진력의 훌륭한 리더였나?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란 구성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줄 아는 자이다. 하지만 지금 당선인은 국민들과의 대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이명박 공식 홈페이지 의 우측 하단 배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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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을 적극적으로 '얻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겠다는 것인데, '얻는다'의 의미는 한참 애매하다. 추측하건대 이명박 당선인은 국민의 소리를 인터넷을 통해 듣겠다는 의도로 이와 같은 배너를 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얻는다'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다. 국민의 여론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데 인터넷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인터넷을 적극적 홍보의 매체로 사용하겠다는 의지이고, 실제로 그에게 있어 인터넷은 의견 교환이 아닌 그저 홍보의 도구일 뿐이다.

이명박 당선인이나 인수위와 관련된 홈페이지는 필자가 아는 한 3개가 운영되고 있다. 'MB 이야기 '라는 제목의 블로그와 'MB Plaza '라는 제목의 이명박 공식 홈페이지, 17대 인수위원회 공식 홈페이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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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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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Plaza -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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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직 인수위 공식 홈페이지


블로그에는 이명박의 글에 댓글을 달 수도 있고, 안부게시판에 방명록과 같이 글을 남길 수도 있다. 물론 네이버의 쪽지 기능을 이용하여 쪽지를 보낼 수도 있다. MB Plaza에는 아예 '참여마당'이라는 메뉴를 따로 두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인수위 공식 홈페이지에는 '국민성공정책제안'이라는 메뉴를 두고 국민들이 직접 제안한 정책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깜빡 속는다. 이명박 당선인이 국민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명박이나 인수위 측의 제대로 된 답변은 단 한 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성공정책게시판에 가끔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있지만 모두 '검토해보겠습니다.'와 같은 몇 줄 안되는 형식적인 것들 뿐이다. 나머지 경우는 대개 국민들만 게시판에서 열심히 떠들고, 인수위는 이를 보는지 보지 않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다행히 인수위 홈페이지의 국민성공정책제안 게시판에는 제안된 정책의 처리 상황을 알려 주는 기능이 있다. '접수중 -> 검토중 -> 검토 완료 -> 제안 반영'의 단계를 거쳐 국민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견이 '검토 완료' 상태에서 머물러 있고 '제안 반영'으로 처리된 것은 몇 백개 당 하나 꼴이다. 대부분의 의견들이 진행상황이나 거부 이유조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실제로 이명박 당선인의 추진에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아니, 반영을 떠나서 이명박 당선인이 국민들의 의견을 보기는 하는 건지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에 필자는 이명박 당선인과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해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 상의 아이디로 쪽지를 보내 보기도 했고, 댓글도 남겨 보았고, 안부 게시판에 글을 남기기도 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답변은 커녕 네이버 쪽지 수신확인 기능으로 확인한 결과 보낸 지 3일이 넘도록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바빠서, 인수위의 업무가 많아서 그런것 따위에는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다른 업무보다 소홀하게 해도 되는 부수적인 업무냐고 되묻고 싶다. 따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부서를 두어도 시원찮을 판에 공식적인 의견 전달 창구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다른 경로 마저 전혀 확인하지 않는 것은 국민 의견 수렴에 소홀한 것이 아니라 아예 의견 수렴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보나 독재자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블로그도 확인하지 않는 그가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볼 턱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블로고 스피어에서 블로거들이 떠들어 대도 이명박 당선인은 계속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최악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일단은 이명박 당선인이 귀를 열어야 한다. 진짜 여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국민을 섬기려면 국민에게 귀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근데, 문제는, 어떻게 귀를 열게 할 것이냐이다. 귀를 열었다 쳐도 어떻게 그 강한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꺾을 수 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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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잘못 쓰이는 우리말을 찾아 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드는 예 중 하나가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동이다. COMMONPLACE™ 님의 틀린그림, 아니죠~ '다른 그림' 맞습니다! 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일상 생활 속에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왜 '틀리다'와 '다르다'가 혼동되게 되었을까? 왜 '다른 그림 찾기'가 '틀린 그림 찾기'가 되어 버린 것일까? 필자는 국어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한 가지 가설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영어에서 Different와 Wrong을 헷갈려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의미적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다른 것'두 개 이상의 것에 같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틀린 것'하나라 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판별했을 때 그르다는 의미이다. 의미에도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고, 단어의 생김새도 전혀 다른 두 말이 비슷해 진 것은 일본어의 잔재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일본어로 '틀리다'는 '間違う'(まちがう, 마찌가우)라고 표현하며, '다르다'는 '違う'(ちがう, 찌가우)라고 표현한다. 보다시피 '다르다'라는 말에 한 글자만 붙여 주면 '틀리다'라는 말이 되고, 충분히 혼동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어 사전을 찾아 보면 알겠지만, 違う에는 '다르다'라는 의미와 함께 '틀리다'라는 의미까지 들어 있다. 때문에 실제로 일본어를 사용할 때에는 '틀리다'와 '다르다'를 크게 구별하지 않고 대체로 違う를 쓰는 경향이 있다.

COMMONPLACE™ 님께서 문제제기하신 '틀린 그림 찾기'도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어에서 다른 그림 찾기는 画探し(えさがし, 에사가시)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숨은 그림 찾기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다른 그림 찾기만을 말할 때에는 間違い探し(まちがいさがし, 마찌가이사가시)라고 표현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間違い'는 '다른'이 아니고 '틀린'이다. 즉 間違い探し를 그대로 번역해 보면 '틀린 점 찾기'가 되는 것이다.

즉, 필자는 일본어에서 '틀리다'와 '다르다'를 큰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것이 한국어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을 찾는 것은 국어학자가 해 줄 일이고, 필자는 확인되지 않은 한 가지 가설을 제기해 본 것 뿐이다. 하지만 이 것이 일본어의 잔재이든 아니든 간에, '틀리다'와 '다르다'가 구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고,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의식적으로 올바르게 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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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필자의 학급에서는 점심시간에 컴퓨터를 개방하여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I-Meps라는 음악 감상 프로그램에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를 재생 목록에 올려 놓고 랜덤재생으로 이를 듣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노래(OP/ED, Character Song)나 윤하의 노래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주로 이런 노래들을 추가해 놓는데, 대부분이 일본 노래이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쪽바리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일본 노래가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노래만 좋은 건 아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가 일본 노래 중에 많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필자가 싫어하는 타입의 노래가 한국 노래 중에 많이 있다. 필자가 싫어하는 타입의 노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노 님의 표현을 빌려 '질질 짜는 노래'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또한 사랑으로 인해 아플 수도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에 마냥 '질질 짜는' 노래는 딱 질색이다.

사랑앓이 - FT아일랜드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기다림을 앓고 있다고
내가 더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그리워 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눈물로 앓고 있다고 이렇게
...
그저 내목숨 다 바쳐 사랑할 사람
이제 날 잊고 살아갈 무정한 사람
그저 내전부를 다 바쳐 사랑할 사람
이제 날 잊고 살아갈 너
내 목숨 다 받쳐서 사랑할 사람
내게는 눈물만 주고 갈 사람

위 노래는 많은 인기를 얻은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이 노래는 필자가 싫어하는 노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별을 아름답게 맞지 못하고 미련이 남아 '앓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 싫다. 만난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고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상 이별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것이 사랑임을 뻔히 알면서 이별을 준비하지 못해 이별 후에도 미련에 괴로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에게는 불쾌함을 준다.

으랏차차 - 럼블피쉬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해도 내일 향해 걸어가는 이길이
언젠가는 더 커다란 날개가 되어 줄테니 나를 긴장하게 한거야
지루하게 보였던거야 네 모습을 보여줘 수줍어서 그런거야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고독이란 너의 이름만으로
다시 밀어내려고 이렇게 난 소리질러
으라차차 한 번 더 참아볼게 으하하하 웃으며 넘겨볼게
혼자여서 좋은 일이 아직도 너무 많은데~

위에 소개한 가사는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에 속하는 럼블피쉬의 으랏차차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이 노래는 일본 노래도 아니며, 사랑앓이와 마찬가지로 이별 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 이유는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언뜻 들어 보아서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밝은 멜로디에 즐거운 가사이다. 제목 또한 으랏차차로, 아픔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이는 단어이다. 하지만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속뜻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별 후에 다시 찾아온 고독, 그 고독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웃음으로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4-1 한국 문학의 개념과 특질 중......
눈물을 닦아 낼 수 있는 것은 웃음이다. 우리 민족은, 슬픈 상황을 슬프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상황을 더 슬프게 만들 뿐이며,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은 오로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문학에서는 슬픈 대목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흔하다.
......
삶은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려움도 겪게 되고, 슬픈 일도 당하게 되는 것이 삶이다. 사람은 그것을 이겨 내면서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위급하거나 절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위기감이나 슬픔을 씻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혜가 문학에 나타난 것이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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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책의 본문 중 일부이다. 우리 문학의 특질을 소개하며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는 소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우리 문학의 특질이다. 위에 소개했던 럼블피쉬의 으랏차차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문학의 특질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슬픔에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하며 이겨내는 노래가 좋다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 노래를, 그 중에서도 남자 가수들의 노래를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짓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남의 노래를 평가한다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필자가 듣기에 그들의 노래에는 진실됨이 결여되어 있다. 슬픈 노래를 불러도 슬픈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으며 즐거운 노래를 진짜로 즐기면서 부르는 사람은 드물다. 노래를 들어도 뭔가 말라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교'라고 부르는 여러 창법들은 필자에게 거북함을 줄 뿐이다. 노래의 잘 하고 못 함을 누가 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요치도 않은 부분에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것을 보고 잘한다고 하는 것을 필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 적절한 플래시의 사용은 페이지의 질을 높여주지만 지나치게 많은 플래시는 오히려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로딩 속도를 떨어뜨리며 조잡하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노래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한다. 클라이막스에서 기교를 뽐내는 것은 좋지만, 이를 남발하는 것은 듣는 이에게 거북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많은 일본 노래를 아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일본 노래라고 해 봤자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노래와 윤하의 노래 정도밖에 모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 중에는 필자가 싫어하는 노래의 유형이 없다. 질질 짜는 노래도, 감정이 없는 노래도, 억지로 기교를 부린 노래도 없으며 자신의 기분을 가사와 선율로 표현한 솔직한 노래들이다.

이 글로 필자가 교실에서 일본 노래를 트는 것에 대한 변명은 충분히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밝혀 두지만, 이 글은 필자의 취향을 남들에게 강요하고자 함이 아닌 필자의 취향을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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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다니고 있는 인천 부원중학교자전거로 통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장 큰 이유는 '학교 주변 교통이 혼잡하여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원중학교 교문 바로 앞에는 경원로라고 하는 큰 길이 있다. 이 길은 인천의 동과 서를 잇는, 인천에서 가장 크다고도 할 수 있는 길이며 인천지하철과 국철을 연결시켜주는 부평역 바로 앞에 위치한다. 또 10개가 넘는 버스 노선이 겹쳐지는 버스 노선의 집결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매우 복잡한 교통 상황에 있다 보니 분명 교통사고의 위험 또한 매우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교통사고의  위험이 큰 곳에서 자전거 통학을 금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닐까.

일본의 경우 대중교통이나 도로 이용료가 굉장히 비싸다. 때문에 학생들부터 회사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여 통학을 하고, 출퇴근을 한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등록제이다. 일본의 도시의 대다수에는 자전거 도로가 매우 잘 닦여 있으며 인도와의 구분이 확실하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중간에 노점상이 있어 통행에 방해를 받는 일도 없고, 자전거 도로와 도로의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도시에서의 자전거 이용이 매우 편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도 분명히 자전거 도로가 있다. 필자가 사는 인천에는 대부분의 인도에 자전거 도로가 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라고 해 보았자 인도 한가운데에 초록색 블럭을 깔아 놓은 것이다. 그마저도 중간 중간 자전거 도로 한가운데에 전봇대가 서 있고 장애물이 있어서 자전거 도로만을 통한 자전거 통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전거 도로 대신에 인도나 차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인도와 자전거 도로의 구분이 모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도 위에서 자전거를 타며, 솔직히 필자는 차도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위험한 환경은 역시 위험한 자전거 도로 환경에서 기인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환경이 위험하다고 자전거 이용을 규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위험한 환경을 개선시켜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 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전거를 탈 때 걸어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차도 아니라는 점 때문에 양쪽에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그런 점들만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큰 일보(一步)이다. 이 일보를 위해 힘써야 할 사람들은 시청이며, 의견 제시에 활발히 나서야 하는 것은 시민이다. 학교가 나선다면,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하나의 훌륭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비용적인 측면이나 지리적·구조적 상황, 여러 이해 관계를 생각해 보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하나씩 해 나갈 때 발전이 있는 것이다. 무조건 자전거 도로를 설치해 달라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설치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타당한 이유와 함께 자전거 통행자의 안전과 편리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는 '높은 분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이 살 만한 나라라면, 시민의 목소리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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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본 포스트에 나타난 학교의 모습은 필자가 아직 많은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관계로 필자가 다니고 있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1동 부원중학교의 모습을 근거로 한다. 혹 다른 학교와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의 학교는 인천에서 좋은 쪽에 속하는 학교이고, 다른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일반화시켜 논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난 번에 포스팅변화는 의무다. 라는 글에서 필자는 학교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문제점과 함께 앞으로의 방향까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소위 학교는 지식만을 얻어가는 곳이 아닌, 미래의 사회생활을 위한 인성과 인간관계 등을 배우는 소사회라고 말한다. 물론 학교는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시민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으로, 민주시민 양성의 장으로도 그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학교가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는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이다. 필자는 오히려 학교는 민주시민 양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사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다. 곧 만인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전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학생은 단지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의 의사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 행사나 학교 운영에 관한 회의는 일체 선생님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학생은 참여하거나 발언을 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학교에 '학생회' 혹은 '대의원 회의'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회의기구가 있으나, 실제로 회의의 개최 여부나 일정도 선생님에 의해 결정되고 내용 조차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학생의 제한적인 참여에 대해 학교는 '아직 학생은 정확한 의사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를 가해 주어야 한다'는 이유를 댄다. 물론 학생들의 의사판단이 부정확하고, 때론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이라고 모든 의사결정을 옳은 쪽으로 한다면 정책이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정확할 수는 없기에 많은 정책이 실패를 하고, 그런 실패 속에서 겨우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학교에서 학생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회에서의 의사결정의 준비단계가 될 것이다. 자신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때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 자신의 선택 하나가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있게 행동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러한 연습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사회로 나간 사람들은 의사결정에 있어 서투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비록 모든 영역에서 학생에게 자치권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제한적으로 어느 선까지는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될 수 있도록 학교의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학생 투표 시스템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의사결정 방법은 투표이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 위해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투표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그렇게 큰 비용이 없이도 투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생회의 개최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와 같이 특정일에 정기회의를 두고, 학생의 발의에 의해 선택적으로 임시회의 개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학생회실이 따로 존재하고, 학생회 간부 및 각 반 임원이 자유롭게 출입하여 서로간에 의견을 교환하거나 친목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회의 권한이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가령, 교칙 변경의 권한을 줄 것인지에 관해 사전 협의를 한 후 제한적인 교칙 변경을 허용한다든가 하는 권한 명시가 있어야 한다. 학생과 교사가 모두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부여된 권한에 대해서는 이후 교사가 이를 침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학생회에서 결정사항이 있을 경우 교사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해야 한다. 간혹 교칙 변경과 같이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피해가려는 교사가 있는데, 학생들의 자치기구에서 결정된 사항이 학교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처음에는 회의 주제가 부족하여 제대로 된 회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서로 회의를 하고 의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만으로 학생회는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혹 큰 토론 주제가 있을 경우 충분한 토론을 하여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반영될 것이다. 토론을 하면서 의견을 관철시키는 법, 또는 의견을 굽히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의사 결정의 타당성을 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두는 사회를 위한 발판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사회이며, 민주시민으로서 결정을 내리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줄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먼저 학교를 하나의 작은 민주사회로 만드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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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천부 인권이라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이라는 그 자체의 이유 때문에 존중받고 살 권리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되고 있으며, 법률이나 개인이 이를 침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것들을 떠나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최대한 서로를 존중해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은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의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폭행하거나 말로 인신공격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조롱하는 투로 말을 하거나 비난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거나 기타 악의가 담긴 말을 하는 것등은 모두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필자는 사람과 친해지면 친해 질수록 점점 더 조심한다. 왜냐하면 필자의 성격상, 친한 사람에게는 아무렇게나 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을 알기 때문에 친한 사람일수록 더욱 조심히 대하고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필자가 온라인에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존칭을 사용하고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도, 말을 놓다 보면 막 대할 수 있고, 결국 트러블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간에도 필요할 경우 목례를 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즉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주위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거슬린다. 다른 친구의 행동이나 성격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인신공격하고, 계속적으로 비난 섞인 말투로 한 사람에게 언어 폭력을 퍼붓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에서 그치지 않고, 심하면 폭행이나 성희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물론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친구의 물건을 자신 것처럼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되려 반환 요구에 화를 내기도 한다. 이는 분명 무례를 넘어 인간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례한 인간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자신의 권리는 철저하게 보호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당하면 이에 대해서는 절대 참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 줄 때에야 자신의 권리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 글은 특정 몇 명을 타겟으로 하고 쓰여진 글이고, 조금 흥분하여 작성을 했기 때문에 횡설수설한 면이 없지 않으나, 타겟으로 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메시지 전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장난을 빙자하여 친구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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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이 글은 악마의9시저주님 께서 문자 메시지로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거야? 조언좀'이라고 물어 오셔서 쓰게 된 글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참고적으로 읽고 넘어갔으면 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영어 학원을 2차례 다녔다. 그마저도 모두 2개월 정도 다니다가 끊어서 거의 다니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본인이 영어 학원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금세 끊게 된 것은, 학원 영어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본 포스트에서는 이 학원 영어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한다.

필자가 영어를 접한 것은 2살 무렵이다. 집에는 알파벳 퍼즐이 있었고, 이를 맞추며 알파벳을 모두 익히게 된 것이 3살 무렵이었다고 부모님께 들은 바가 있다. 하지만 본격적어로 '언어'로서 영어를 배우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윤선생 영어라고 하는 학습지를 통해 Phonics를 모두 익힌 것은 2학년 말에서 3학년 초 정도라고 기억한다. 그 때 필자는 너무나 값진 기회를 갖게 되었다. 3학년 여름방학에 호주로 2달 간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어머님께서는 매년 딸을 호주에 데려 가고 계셨는데, 그 해에는 딸의 친구들을 같이 데려 가고 싶어서 나를 포함한 5명의 친구들과 함께 호주에 가게 된 것이었다. 필자는 같이 간 2명의 친구들과 함께 동부 Queensland Rockhamton에 위치한 Lakes Creeks State School에 다니게 되었다.

필자가 호주에 갈 때에는 정말 기본적인 문장만을 익혔었다. 아마 자기소개 정도였을 것이리라. 호주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관계대명사가 필요한 문장을 어떻게 구성해야 되는지 몰라서 헤맸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호주에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못 한다고 불편했던 점은 거의 없었다. 아주 기본적인 문장만으로도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하지만 기억하기로는, 같은 학교에 다녔던 2명의 친구들은 나와 영어 실력이 비슷하거나 더 나았음에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서 내가 대신 통역을 해 주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Phonincs만 끝내고 온 나보다 학원에도 다녔던 그들이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 이유를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방식에서 찾고 싶다. 필자가 학원을 길게 다니지 못한 것도, 영어는 좋아하면서도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싫어하는 것도 모두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하는가를 생각해 보라. 세계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이는 너무나 상투적이다. 외국인과 만났을 때 자유롭게 얘기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만약 앞에 외국인이 있을 때 인사를 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당장이라도 미국 한복판에 떨어졌을 때 살아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영어로 된 문서를 쉽게 읽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런 문서를 읽어 보았는가? 독해 책 이외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영문 문서를 스스로 독해해서 읽어 본 적이 있는가?

결국 자신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되묻다 보면, 영어 교육의 목표가 한참 빗나가서 시험을 향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필자는 TOEIC이나 TOEFL과 같은 시험의 존재 자체가 싫다. 언어라는 것이 과연 시험으로 그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을 던져보자. 시험으로는 단지 문법이나 어휘력, 독해능력이나 Listening 능력 정도만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몇 달만 마음 잡고 공부하면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는 실패만을 가져온다. 외국인과의 대화는 결코 시험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국어 시간의 듣기평가를 떠올려보자.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영어 듣기평가와 외국인들과의 실제 대화가 얼마나 다를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아무리 TOEIC 만점을 맞아도 외국에 가서 한 마디도 못 하고 오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영어를 학문이 아닌 언어로 인식해야 한다. 문장 하나를 해석하더라도, 주어니 동사니 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언어 학습에만 있는 특별한 '느낌'으로 뜻을 찾아야 한다. 가령, 'A as well as B'라는 구문을 배울 때 무조건 'B뿐만 아니라 A도' 라고 암기하기보다, 'well'의 뜻과 'as'의 용법을 떠올려 느낌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말에서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어순으로 문장을 구성하여 놓았더라도 글쓴이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말은 학문적으로 이것 저것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느낌으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실력이 아닐까.

영어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 자신 주위의 것들 중에 영어를 찾으라. 필자의 경우 프로그래밍을 하기 때문에 ACM 프로그래밍 문제를 푸는데, 문제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다. 이것을 번역하면 그게 영어 공부이다. 꼭 영어 책을 펴 놓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면 일본어를 잘 하게 되듯, 언어를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활로서 즐기는 것, 그것이 언어 학습의 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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