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과 학교

Opinion 2009/07/24 22:29
최근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MB악법이라는 이름의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해를 넘기고도 반년이 지났는데도 진척이 없다가 결국 얼마 전 일명 미디어법이 직권 상정과 난장판 투표 속에서 통과되었다. 그마저도 부정 대리 투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 쪽에 책임을 물으려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도 잘 한 쪽은 없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한 발씩 양보하여 절충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정권 획득이라는 목적에만 매달려 그 어떤 타협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국회 파행과 국민의 불신을 야기했다.

그렇다고 19대, 20대 국회에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토론을 통한 타협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로 자란 지금의 세대가 비단 정치판에서만 제대로 된 의사 결정 과정을 보여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는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라고 말하고 싶다. 교육, 지도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말하자면, 학생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껏 해야 학교 시설 개선에 대한 요구 사항을 학생들로부터 수합하여 교사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있을 뿐, 교칙 수정 혹은 수정 요구의 권한도, 중요 행사의 일정 결정 권한도 없다.

필자는 아직 다니고 있는 학교의 교칙을 본 적이 없으며, 아마 학생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학기 초에 받은 것이라고는 '학생 생활 규범'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교칙의 일부로 보이지만 이 역시 학생 징계시 사전 처벌 기준 공개의 근거로서 사용하려는 목적 이상의 의도는 찾을 수가 없다. 교칙을 모르는데 교칙에 대해 수정안을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누군가 만들어 놓은 교칙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서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수정안을 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져 버렸다.

학생 생활 규범만 해도 수정할 곳은 수없이 많다. 일단 학생회에서 규범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한 부분이 없다. 게다가 학생 징계시 지나치게 교사의 자율을 보장했고, 처벌 기준마저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특히 '교사 지시 불이행'이라는 벌점 항목은 결국 교사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조항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행동에 대해 그 행동에 해당하는 벌점 항목과 교사 지시 불이행 항목을 중복하여 처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시간 규정 같은 경우 교사 임의로 시간을 변경하거나 5~10분씩 일찍 기준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충분히 교사로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미 너무 길들여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교사로서 더욱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학생들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또한 적당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100% 교사의 자율과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회를 소집하여 새로운, 혹은 변경된 규칙의 의도와 목적을 알리고 필요할 경우 투표 등을 통하여 확정되면 명문화하는 절차가 도입되어야 한다. 확정된 규칙의 시행에 있어서도 처분에 대한 불만 제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을 반드시 열어 두고, 불만이 제기될 경우 이를 심의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야 교사마다 다른 처벌, 이중 처벌 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들을 잘 홍보하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충분히 공감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늘 선생님께서 정해 주신 룰이 있었다. 불만이 있더라도 그냥 참고 잘 따르면 착한 학생 소리를 듣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결코 누군가 룰을 정해 주지 않는 곳이다. 직접 룰을 만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한 번도 누군가와 룰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의견 조율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결국 싸움판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학교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학교 민주주의 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가장 먼저 학생회를 살리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공부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도 교육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정치를 위한 밑거름이고,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의사 소통 능력의 배양이다. 수학 문제 몇 문제 더 푸는 것보다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이 지킬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더 필요한 능력이다.

학교의 학생 회장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은 공약을 몇 개씩 건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 중 대부분이 학교 시설 개선이라는, 너무나 수준 낮은 공약들에 머문다는 것이다. 올해 선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약은 '학급회의 정상화'였다. 그 후보의 당락을 떠나서, 그러한 공약이 나왔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모든 학교에서 '정수기 설치', '커튼 교체' 등의 공약에서 '학생회 정상화', '교칙 공개', '처벌 심의 기구 설치' 등의 한 차원 높은 공약으로 바뀌어야 한다. '두발 자유'를 선생님께 백 번 외치는 것보다는 학생회를 정상화시키고 진지한 토론과 의사 교환을 통해 교칙 수정에 합의하는 방법이 훨씬 빠르고 현실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만든 규칙은 누군가에 의해 강요당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규칙이기에 더욱 잘 지키게 될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하루 빨리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그들이 지킬 규칙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잡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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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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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암 2009/07/26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진학이라는 미명아래 모든 가치가 함몰된 학교교육 현실이 안타깝네요.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고 작금의 정치상황과 결부시켜 원인을 해석하는 해리님의 혜안이 탁월하네요. 해리님이 생각하는 바를 지금은 글로 적었지만, 다음엔 행동하는 양심,실천하는 해리님이 되길 바랄께요.